문명세계에서 확고히 자리잡은 표현의 자유 확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 존 밀턴(1608~1674)이다. 그는 1644년 발표한 <아레오파지티카>에서 ‘사상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시장(free and open market of ideas)’이라는 자유주의의 대명제를 제시했다. “진실과 허위를 공개적으로 대결하게 하는 것이 진리를 확보하는 최선”이라는 <아레오파지티카>의 주장은 그를 자유주의의 원조로 자리매김시켰다. “나에게 어떤 자유보다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밀턴의 선언적 호소는 표현의 자유를 대변하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꼽힌다.
진실과 허위 경쟁시켜야 진리 드러나
대서사시 <실락원>의 작가이기도 한 밀턴은 영국의 시인이자 사상가다. 검열제도를 도입하려는 영국 의회에 항의하는 연설문 형식으로 쓰인 <아레오파지티카>는 고대 그리스어로 ‘법정’을 뜻하는 areopagos(아레오파고스)와 ‘이론’을 뜻하는 ca가 결합된 말이다.
밀턴은 사전검열과 허가제를 반대하는 이유로 현실적으로 완전 규제가 어렵고, 무오류(無誤謬) 검열관은 있을 수 없으며, 학문과 학자들에게 최대의 좌절을 안긴다는 점 등을 들었다. 국민이 알아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당국이 선별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도 했다. “허가제로 어떤 사고(思考)의 전파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원의 문을 닫아버림으로써 까마귀들을 가뒀다고 생각하는 그런 용감한 사람에 비유하지 않을 수 없다.”
거짓과 진리가 대결과 경쟁을 벌이면 필연적으로 진리가 승리한다는 게 <아레오파지티카>의 일관된 논지다. “타인의 사상과 사고에 제한 없이 접근한다면 인간의 이성은 진위와 선악을 구별할 수 있다”며 지적 자유주의에 대한 신념을 감추지 않았다. 밀턴은 “진리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유롭고 공개된 경쟁에 따른 대중적 인정에 의해서만 생존할 수 있는 독특한 힘을 지니고 있다”며 “진리에 단지 대결의 장(場)을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또 “모든 아이디어는 공개시장에서 자율 조정돼야 한다”며 “허위의 의견이든 진리의 의견이든 제한 없이 표현돼야 ‘사상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도록 하라.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하게 되는 것을 누가 본 일이 있는가. 진리의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밀턴은 ‘거짓 의견’일지라도 사전 억제하는 것은 악(惡)이라고 강조한다. “공개시장에서 진리가 거짓과 경쟁하며 진리가 발견되는 것을 방해하고 지연시키기 때문”이다.
검열과 허가의 대안으로는 ‘관용’을 부르짖었다. “진리는 절대자 다음으로 강하기 때문에 허위와 공개적인 대결을 허용하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며 허위에 대한 관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르네상스 이후 전개된 17세기 ‘종교적 불관용의 시대’에 관용을 호소하고 나선 밀턴의 통찰과 용기는 <아레오파지티카>를 ‘언론자유의 경전’으로 자리매김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진리는 승리를 위해 어떤 정책도 전략도 허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오류가 진리의 힘에 대항하기 위한 속임수이며 방어책일 뿐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 진리 발견과 민주주의 발전을 불러올 것이라는 게 밀턴의 진단이다. 그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곳에서는 혁명이나 쿠데타가 일어나 사회가 급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더 안정적으로 사회가 변화해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동체적 가치를 넘어, 표현의 자유는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아 발견을 가능하게 한다고도 했다.
'거짓 의견' 조차 사전 차단은 악(惡)
<아레오파지티카>는 미국·프랑스 혁명의 이데올로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움직였다. ‘의회는 종교의 자유,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또는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해서는 안 된다’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등장도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가능했다.
밀턴은 “기존 지식과 다른 생각에 대해 폐쇄적인 사회는 영원히 진리를 추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레오파지티카>의 관용의 정신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으로 이어졌다. 밀은 사회적 유용성, 즉 공공의 복리를 근거로 누군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행태도 정면 비판했다. “설사 어떤 의견이 잘못인 경우라도 그것을 억압하면, 진리와 오류의 대결로 얻게 되는, 진리에 대한 보다 명료한 지각과 선명한 인상을 잃게 하는 불이익이 초래된다”는 논지를 폈다. 주류의 역사 인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학문을 법정에 세우고, 언론에 ‘노란 딱지’를 남발하는 한국에 ‘사상과 표현의 자유시장’은 작동 중인가.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