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업 하소연에도 귀 닫은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제단체들로부터 “상위법보다 더 센 규제”라는 지적을 받은 ‘일감 몰아주기 심사지침’ 제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준사법기관인 공정위가 국민(개인과 법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사항은 반드시 국회 의결을 거친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법률유보(法律留保) 원칙’을 어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위가 13일 행정예고한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행위 심사지침’ 제정안에는 ‘제3자를 매개로 한 간접거래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고 돼 있다. 공정거래법은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공시 대상 기업집단 소속사 △특수관계인 △특수관계인이 일정 지분 이상 보유한 계열사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행정규칙에 불과한 심사지침을 통해 상위법에도 없는 간접거래까지 규제 대상에 집어넣었다.

심사지침 초안이 지난달 공개되자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은 공정위에 “상위 법령에 없는 간접거래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위임입법 및 법률유보 원칙 위배”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산업계는 “용역거래는 업무 전문성 때문에 제3자를 경유하는 사례가 많은데 심사지침대로라면 이런 것도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원안대로 간접거래까지 규제 대상에 넣었고, 이르면 다음달부터 심사지침을 적용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간접거래를 부당한 이익 제공 행위로 본 2004년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판례는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에 대한 공정거래법 제23조 1항 7호에 대한 것이다. 이번 심사지침은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 2항을 바탕으로 제정하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를 엉뚱한 곳에 적용한 셈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총수 일가의 부당지원 행위를 처벌한 대법원 판례의 의미를 생각하면 불공정거래행위와 일감 몰아주기를 구분해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그런 식이면 정부 부처가 원하는 법 조항을 여기저기서 끌어와 새로운 규제를 만들 수 있다”며 “부당한 간접거래 처벌은 이미 배임·횡령죄를 통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법률유보 원칙을 위배했다는 지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공정위는 프랜차이즈 기업이 원가를 공개하도록 가맹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올해부터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는 이와 비슷한 내용의 가맹사업법 개정안이 2017년 말부터 계류 중이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는데도 공정위가 하위 법령인 시행령부터 바꾼 것이다. “공정경제 성과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국회를 패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공정위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