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돌아온 글로벌 양적완화…'뉴노멀'인가 시스템 붕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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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완화 시즌2' 돌입하는 중앙은행들
유로존, 종료 11개월만에 국채 매입 재개…미국도 '재시동'
한국 호주 등 비기축통화국도 "QE 검토"…통화 전쟁 조짐도
양적완화 시즌2 두고 '뉴노멀' vs "세계가 미쳐간다" 논란
백광엽 논설위원
유로존, 종료 11개월만에 국채 매입 재개…미국도 '재시동'
한국 호주 등 비기축통화국도 "QE 검토"…통화 전쟁 조짐도
양적완화 시즌2 두고 '뉴노멀' vs "세계가 미쳐간다" 논란
백광엽 논설위원
양적완화(QE)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시스템 위험이 큰 비정상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시행한다는 게 중앙은행들의 오랜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이 전통이 올 들어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긴박한 국면이 아닌데도 각국이 경쟁하듯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치닫고 있다. 유로존은 마이너스 금리를 심화시키며 이달부터 양적완화를 재개했고 ‘긴축 모드’였던 미국도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급속히 회귀 중이다. 양적완화는 한국 호주 뉴질랜드 등 비(非)기축통화국에서도 채택이 거론될 만큼 글로벌 경제를 이해하는 핵심 단어가 됐다.
양적완화 재시동의 선두주자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19개국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무기한 양적완화’ 재개를 의결하고, 이달부터 월 200억유로씩 자산 매입을 다시 시작했다. 2015년 3월부터 3년8개월간 무제한으로 지속했던 양적완화를 지난해 종료한 지 불과 11개월 만의 급선회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내년 6월까지 매달 600억달러의 단기채권을 사들이기로 하고 10월부터 유동성 공급을 시작했다. 매입자산 규모가 양적완화 2단계(월 750억달러)나 3단계(월 850억달러)와 별 차이가 없어 사실상 양적완화로의 복귀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2016년 1월부터 마이너스(-0.1%) 기준금리에 진입한 일본은행(BOJ)도 2주 전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추가 인하’ 깜빡이를 켰다. 선제적 안내(forward guidance)에 “향후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문구를 명시한 것이다. 비기축통화국 양적완화 나올까
돌아온 양적완화 시즌이 더 주목받는 것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비기축통화국으로까지 정책이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한국 호주 뉴질랜드 ‘트리오’의 기준금리가 나란히 역대 최저 수준(한국 1.25%, 뉴질랜드 1.0%, 호주 0.75%)이지만, 성장률 부진은 더 심화돼 양적완화 채택이 유력하다”고 진단했다. 반(反)정부 시위로 성장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홍콩도 은행의 경기대응완충자본(CCB) 비율 인하를 통해 45조원의 유동성을 푸는 ‘홍콩식 양적완화’를 지난달 단행했다.
중앙은행들이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다시 눈을 돌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황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의 최저인 3.0%로 하향했다. ‘나홀로 순항’하던 미국도 한때 연 3%대였던 성장률이 하반기 들어 연 1%대로 완연히 꺾이는 모습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중국 경제의 3분기 성장률은 6.0%로 27년 만의 최저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역시 2017년 2.4%, 지난해 1.9%로 양호하던 성장세가 올해 1.1% 선으로 추락이 확실시된다. ‘슈퍼 비둘기’로 불린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가 임기종료를 불과 한 달 앞둔 9월 양적완화 재개라는 ‘대못’을 박고 물러난 배경이다.
양적완화를 불러내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내년 대통령 재선 도전을 앞둔 트럼프는 ‘약(弱)달러’를 통한 무역수지 개선을 중시해 Fed에 ‘서브제로(제로 이하)’금리와 ‘양적완화’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는 ECB의 양적완화 재개 결정이 “ECB가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려 미국 수출에 타격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트윗을 날렸다. 동시다발적인 완화적 통화정책 흐름이 환율전쟁의 성격임을 엿볼 수 있는 정황이다.
경기 대응 넘어 '통화 전쟁' 조짐
양적완화라고 하면 ‘헬리콥터 머니’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과 다르다. 중앙은행은 채권매입 시 현금을 주지 않고, 매각 은행이 중앙은행에 개설한 ‘지급준비금 계좌’ 잔액을 전자적으로 늘려주는 방식을 쓴다. 은행이 이 지준을 빼와서 대출할 경우 통화량이 늘지만, 경제가 약할 때는 휴면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은행의 저리 대출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은 저리 대출 시 이자보다 더 높은 이자를 쳐주며 지준을 유지하는 정책을 편다. 경제가 강해지면 지준이 대출돼 통화 팽창이 나타날 수 있지만, 이는 중앙은행이 어느 정도 원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중앙은행은 필요 시 양적완화정책 축소(tapering)나 긴축정책으로 과도한 통화 증발을 조율한다.
QE에 대한 오해·편견 없어야
지급준비금은 본원통화(민간보유 현금통화+금융회사 지급준비금)에 속할 뿐 어떤 광의의 통화량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대신 중앙은행의 자산과 부채가 표기되는 대차대조표의 규모를 키우게 된다. Fed의 대차대조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9000억달러에서 2014년 말 4조4500억달러로 다섯 배가량 급증했고, 지난 8월에는 다시 3조7600억달러로 줄었다.
QE를 둘러싼 이런 정치한 시스템이 버냉키가 “현저한 인플레나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할 위험은 사실상 없다”고 자신하는 배경이다. ‘양적완화 시즌 2’를 맞아 뉴욕 증시 3대지수가 사상 최고치에 오르는 등 글로벌 자산시장이 동반 강세를 보이는 것도 투자자들의 앞선 경험 때문이다. 양적완화가 혼란에 빠진 글로벌 시장을 어떤 새로운 균형점으로 인도하는 ‘뉴노멀’로 작동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양적완화의 핵심적인 문제는 인플레이션 유무(有無)가 아니다. 경제주체들의 구조조정·위험회피 심리를 가속화해 금리·물가·성장률 등의 지표를 모두 하향 안정화시키는 ‘제로 경제’ 함정으로 몰고간다는 점이 문제다. IMF가 최근의 양적완화 확산에 대해 “성장률 둔화폭이 2008~2009년 충격의 절반만 돼도 주요 경제권의 비금융 기업들이 갚지 못할 부채가 19조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한 이유다.
파국을 점치는 훨씬 더 비관적인 분석도 적지 않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를 이끄는 레이 달리오 회장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명분의 통화완화 정책 확산에 대해 “세계가 미쳤고 시스템은 붕괴했다”고 평가했다. 경쟁력 없는 기업에 공짜 대출을 부추기는 부작용으로 공멸을 부를 것이란 주장이다.
'한국판 QE' 돌다리 두드려야
한국은행은 ‘양적완화’라는 말만 들어도 질색하는 편이었지만 최근 기류가 급격히 바뀌는 모습이다. 이주열 총재는 ‘시즌 1’ 때만 해도 “통화정책이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며 구조조정과 경제체질 강화를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열흘 전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서는 “양적완화 방안도 연구 중”이라고 깜짝 발언했다. “제로금리가 반드시 기준금리 하한선인 것은 아니다”며 마이너스 금리 가능성을 시사한 금융통화위원도 등장했다.
한국은행은 비기축통화국인 스위스 스웨덴 체코의 0%대 금리 사례를 언급하며 완화적 통화정책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환투기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핵심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우리도 걱정하고 있다”고 얼버무렸다. 통화정책이 ‘무차별성’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 요소다. 앞선 금융위기 때의 완화적 통화정책 혜택이 경제주체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양적완화는 민간의 위험을 국가기구로 떠넘기는 올인 전략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kecorep@hankyung.com
양적완화 재시동의 선두주자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19개국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무기한 양적완화’ 재개를 의결하고, 이달부터 월 200억유로씩 자산 매입을 다시 시작했다. 2015년 3월부터 3년8개월간 무제한으로 지속했던 양적완화를 지난해 종료한 지 불과 11개월 만의 급선회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내년 6월까지 매달 600억달러의 단기채권을 사들이기로 하고 10월부터 유동성 공급을 시작했다. 매입자산 규모가 양적완화 2단계(월 750억달러)나 3단계(월 850억달러)와 별 차이가 없어 사실상 양적완화로의 복귀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2016년 1월부터 마이너스(-0.1%) 기준금리에 진입한 일본은행(BOJ)도 2주 전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추가 인하’ 깜빡이를 켰다. 선제적 안내(forward guidance)에 “향후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문구를 명시한 것이다. 비기축통화국 양적완화 나올까
돌아온 양적완화 시즌이 더 주목받는 것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비기축통화국으로까지 정책이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한국 호주 뉴질랜드 ‘트리오’의 기준금리가 나란히 역대 최저 수준(한국 1.25%, 뉴질랜드 1.0%, 호주 0.75%)이지만, 성장률 부진은 더 심화돼 양적완화 채택이 유력하다”고 진단했다. 반(反)정부 시위로 성장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홍콩도 은행의 경기대응완충자본(CCB) 비율 인하를 통해 45조원의 유동성을 푸는 ‘홍콩식 양적완화’를 지난달 단행했다.
중앙은행들이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다시 눈을 돌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황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의 최저인 3.0%로 하향했다. ‘나홀로 순항’하던 미국도 한때 연 3%대였던 성장률이 하반기 들어 연 1%대로 완연히 꺾이는 모습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중국 경제의 3분기 성장률은 6.0%로 27년 만의 최저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역시 2017년 2.4%, 지난해 1.9%로 양호하던 성장세가 올해 1.1% 선으로 추락이 확실시된다. ‘슈퍼 비둘기’로 불린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가 임기종료를 불과 한 달 앞둔 9월 양적완화 재개라는 ‘대못’을 박고 물러난 배경이다.
양적완화를 불러내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내년 대통령 재선 도전을 앞둔 트럼프는 ‘약(弱)달러’를 통한 무역수지 개선을 중시해 Fed에 ‘서브제로(제로 이하)’금리와 ‘양적완화’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는 ECB의 양적완화 재개 결정이 “ECB가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려 미국 수출에 타격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트윗을 날렸다. 동시다발적인 완화적 통화정책 흐름이 환율전쟁의 성격임을 엿볼 수 있는 정황이다.
경기 대응 넘어 '통화 전쟁' 조짐
양적완화라고 하면 ‘헬리콥터 머니’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과 다르다. 중앙은행은 채권매입 시 현금을 주지 않고, 매각 은행이 중앙은행에 개설한 ‘지급준비금 계좌’ 잔액을 전자적으로 늘려주는 방식을 쓴다. 은행이 이 지준을 빼와서 대출할 경우 통화량이 늘지만, 경제가 약할 때는 휴면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은행의 저리 대출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은 저리 대출 시 이자보다 더 높은 이자를 쳐주며 지준을 유지하는 정책을 편다. 경제가 강해지면 지준이 대출돼 통화 팽창이 나타날 수 있지만, 이는 중앙은행이 어느 정도 원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중앙은행은 필요 시 양적완화정책 축소(tapering)나 긴축정책으로 과도한 통화 증발을 조율한다.
QE에 대한 오해·편견 없어야
지급준비금은 본원통화(민간보유 현금통화+금융회사 지급준비금)에 속할 뿐 어떤 광의의 통화량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대신 중앙은행의 자산과 부채가 표기되는 대차대조표의 규모를 키우게 된다. Fed의 대차대조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9000억달러에서 2014년 말 4조4500억달러로 다섯 배가량 급증했고, 지난 8월에는 다시 3조7600억달러로 줄었다.
QE를 둘러싼 이런 정치한 시스템이 버냉키가 “현저한 인플레나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할 위험은 사실상 없다”고 자신하는 배경이다. ‘양적완화 시즌 2’를 맞아 뉴욕 증시 3대지수가 사상 최고치에 오르는 등 글로벌 자산시장이 동반 강세를 보이는 것도 투자자들의 앞선 경험 때문이다. 양적완화가 혼란에 빠진 글로벌 시장을 어떤 새로운 균형점으로 인도하는 ‘뉴노멀’로 작동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양적완화의 핵심적인 문제는 인플레이션 유무(有無)가 아니다. 경제주체들의 구조조정·위험회피 심리를 가속화해 금리·물가·성장률 등의 지표를 모두 하향 안정화시키는 ‘제로 경제’ 함정으로 몰고간다는 점이 문제다. IMF가 최근의 양적완화 확산에 대해 “성장률 둔화폭이 2008~2009년 충격의 절반만 돼도 주요 경제권의 비금융 기업들이 갚지 못할 부채가 19조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한 이유다.
파국을 점치는 훨씬 더 비관적인 분석도 적지 않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를 이끄는 레이 달리오 회장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명분의 통화완화 정책 확산에 대해 “세계가 미쳤고 시스템은 붕괴했다”고 평가했다. 경쟁력 없는 기업에 공짜 대출을 부추기는 부작용으로 공멸을 부를 것이란 주장이다.
'한국판 QE' 돌다리 두드려야
한국은행은 ‘양적완화’라는 말만 들어도 질색하는 편이었지만 최근 기류가 급격히 바뀌는 모습이다. 이주열 총재는 ‘시즌 1’ 때만 해도 “통화정책이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며 구조조정과 경제체질 강화를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열흘 전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서는 “양적완화 방안도 연구 중”이라고 깜짝 발언했다. “제로금리가 반드시 기준금리 하한선인 것은 아니다”며 마이너스 금리 가능성을 시사한 금융통화위원도 등장했다.
한국은행은 비기축통화국인 스위스 스웨덴 체코의 0%대 금리 사례를 언급하며 완화적 통화정책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환투기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핵심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우리도 걱정하고 있다”고 얼버무렸다. 통화정책이 ‘무차별성’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 요소다. 앞선 금융위기 때의 완화적 통화정책 혜택이 경제주체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양적완화는 민간의 위험을 국가기구로 떠넘기는 올인 전략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