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예상기간' 묻자 기간제 자각 생겨 증가분 30만명 껑충

올해 비정규직 근로자가 수십만명 급증한 것은 통계청 설문조사의 한 문항이 가져온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고 통계청이 설명했다.
설문조사 한 문항이 어떻게 비정규직 50만명을 늘렸을까
31일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748만1천명으로, 1년 전보다 무려 86만7천명이 늘었다.

2003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비정규직 근로자가 2004년(78만5천명)을 빼고 전년 대비 34만명 이상 증가한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이할 정도로 큰 폭으로 숫자가 튀어 오른 셈이다.

통계청은 이 같은 이상 조사결과가 나온 원인으로 올해 처음 도입한 병행조사의 문항을 지목하고 있다.
설문조사 한 문항이 어떻게 비정규직 50만명을 늘렸을까
기존 경제활동인구조사의 22항에서는 '지난주의 직장(일)에서 고용계약기간을 정하였습니까'라고 묻고 1번 '정하였음'을 택할 경우에만 고용계약기간을 선택하도록 했다.

1번 응답자는 모두 기간제 근로자로 계산했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사 기준 강화를 준빌라기 위해 올해 3월과 6월, 9월 도입한 병행조사에서는 22항에서 고용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다고 답하더라도 고용예상기간을 따로 고르도록 했다.

고용예상기간 및 고용계약기간 선택지를 3개월 단위로 세분화하고 '기간제한 없음(정년제 포함)' 항목도 추가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 대상자는 기간제 근로자라는 자각이 없다가 기간제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후 조사에서도 계속 기간제라고 응답하게 됐다는 것이 통계청의 설명이다.

8월 부가조사에도 '지난주의 직장(일)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십니까'(53-2항)라는 질문이 있기는 하지만, 고용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면 응답할 필요가 없는 항목이다.
설문조사 한 문항이 어떻게 비정규직 50만명을 늘렸을까
22항을 반복해서 물어본 것도 조사결과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 매월 진행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병행조사까지 연달아 답변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자신의 고용형태를 되돌아보게 되고 고용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가 수정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주장은 기간제 근로자 증가 추이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올해 8월 기준 기간제 근로자는 379만9천명에 달했다.

단순 비교 시 1년 전(300만5천명)보다 26.4%인 79만5천명 늘어난 것이다.

기간제 근로자 수는 올해 1월과 2월 각각 11만1천명, 25만8천명 증가했지만, 병행조사를 처음 실시한 3월 54만5천명으로 급증했고 이 같은 추세는 4월(56만2천명), 5월(58만8천명)에도 이어진다.

조사가 또다시 진행된 6월에는 증가분이 80만1천명으로 뛰었고 7월과 8월에는 각각 82만7천명, 79만5천명이었다.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를 유형별(중복집계 기준)로 나누면 한시적 근로자가 478만5천명, 시간제 근로자가 315만6천명, 비전형 근로자가 204만5천명이었다.

한시적 근로자는 기간제 근로자와 비기간제 근로자를 포괄한다.

기간제 근로자는 근로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고 비기간제의 경우 근로계약 기간을 설정하지 않았으나 계약을 갱신·반복해 계속 일할 수 있는 근로자와 비자발적 사유로 인해 계속 근무를 기대하기 어려운 근로자를 말한다.

병행조사 시점마다 기간제 근로자 수가 껑충 뛰고 지속하는 현상이 앞으로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통계청은 예상했다.

정동욱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병행조사 때마다 계단식으로 (기간제 근로자 증가분이) 올라갔는데 무한정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어떤 이벤트든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사라지고 단시간 내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설문조사 한 문항이 어떻게 비정규직 50만명을 늘렸을까
이 같은 병행조사의 영향으로 고용 기간을 '정하지 않았음'(이하 비기간제)이라고 답했다가 '정하였음'으로 돌아선 응답자 수가 35만∼5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통계청은 추정하고 있다.

이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전월과 해당 월 같은 응답자가 비기간제에서 기간제로 유입한 경우를 3∼8월 누적으로 합산해 비교한 것이다.

2017년 3∼8월에는 유입 응답이 56만2천명, 2018년 같은 기간에는 60만1천명이었지만 올해는 106만6천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여름 고용 상황이 유독 좋지 않았던 것을 고려해 2017년과 2019년을 비교하면 격차는 50만4천명으로 벌어진다.

좀 더 정밀하게 보면 산업과 직업, 종사상 지위가 전월과 해당 월 동일한 응답자가 2019년 3월에서 8월 사이 비기간제에서 기간제로 유입된 경우는 73만1천명(누계 기준)이었다.

2018년에는 38만1천명, 2017년에는 35만7천명이다.

올해와 전년을 비교하면 차이는 35만명이 난다.

정 과장은 "이를 100%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유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올해 8월 기간제 증가가 79만5천명으로 큰데 원인을 파악해서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