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판의 등뼈…외형적 급성장에도 미흡한 전시수준·소장선 지적
"미술관, 역사관으로 공론장 역할해야"…4개관 차별화도 숙제

20일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이라는 크나큰 잔치를 앞둔 한국 미술계는 차분하다.

15년 만의 증축을 거쳐 21일 재개관하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두고 수개월 전부터 기사가 쏟아지고 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달라질 미술관을 볼 기대에 부푼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국내 최대 전시기관이자 유일한 국립미술관으로 국가 미술정책을 펼쳐 보이는 국립현대미술관 존재감이 그만큼 묵직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반세기 사이에 아시아 최대 미술관으로 부상하며 급속한 외형적 성장을 이뤄냈지만, 개혁 과제도 산적하다.

미술관의 달라진 역할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며 전시수준과 소장선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조용한 잔치, 산적한 과제
◇ "오늘날 미술관, 역사관…공론장 역할해야"
오늘날 미술관은 더는 전시관이 아니다.

아름답거나 흥미로운 시각예술을 선보이는 것을 넘어 당대의 뜨거운 공론장으로 기능할 것을 요구받는다.

한국미술판 등뼈나 다름없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까지 미술판이나 사회에 그러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게 미술인의 공통된 지적이다.

임우근준 미술평론가는 1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미술관은 미술품을 소장·연구해서 우리 사회가 지나온 역사를 이야기하고 미래 지향점을 만들어나가는 '역사관'"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임 평론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시대 이슈에 적극적으로 화답해야 한다"면서 "가령 지금 여성 담론이 뜨겁다면 국립현대미술관 또한 이를 담아낸 전시뿐 아니라 백서도 발표하고 미술관 내 평등 문제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당수 대형 기획전이 외국 미술관이랑 비교했을 때 사실상 '벼락치기'에 가까운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것도 문제다.

장기적인 비전을 쫓기 보다는 5년 정권 임기와 3년 관장 임기에 따라 계획이 자주 변화한 탓이 크다.

핵심인력인 학예직 고용안정성도 늘 문제로 거론된다.

2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참여한 한 중견 작가는 "당시 함께 일한 큐레이터들이 그만두거나 다른 관으로 옮겼다"면서 "담론은 '뚝딱'하는 식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빈번한 토의를 통해 만들어지는데 호흡이 너무 짧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조용한 잔치, 산적한 과제
◇ "그 작가에 그 작가" 비판…4관 성격 차별화도 숙제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성 유명작가 위주로 작업을 소개한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지난 30년간 전시한 작가를 보면 백남준, 이응노, 김환기, 김기창, 오지호, 박래현, 박섭, 박수근 등이 다수 전시에 등장했다.

이러한 라인업에는 이들과 관계가 있는 대형 갤러리들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다.

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한 작가 듀오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보면 그 작가가 그 작가다.

김치찜,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미술계 대표선수를 배출했으나 2014년 중단된 신진작가 기획전 '젊은 모색'이 5년 만에 부활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1986년 과천관 개관 당시 공채 1기 큐레이터였던 이화익 이화익갤러리 대표(직전 화랑협회장)는 "젊은 작가 개인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성장을 돕는 전시가 아쉽다"면서 "일본만 해도 무라카미 다카시나 나라 요시토모 같은 유명 작가들이 30대 초반부터 미술관 전시를 선보이면서 성장했다"고 말했다.

과천·서울·덕수궁·청주 등 4개 관을 어떻게 차별화할지도 숙제다.

특히 본관 격인 과천관 활용안에 관심이 집중된다.

2013년 삼청동 화랑가 지척에 문을 연 서울관 관람객이 급증하는 가운데 한때 100만명이 찾았던 '동물원 옆 미술관'인 과천관의 관람객은 급감하는 추세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규모는 세계적인 수준을 갖췄으나 내용 면에서 지금부터 충실하게 짜나가야 한다"면서 과천관은 자료·교육 기능과 도시인 휴식 제공, 서울관은 타예술과의 통섭, 덕수궁은 근대미술관 이미지 강화, 청주수장고는 중부지역 현대미술 중심지 역할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