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생가 탐방…평범한 학생·노동자에서 사제·교황으로
목숨 노린 저격범 용서·석방 탄원…한국 두 번 찾은 '각별한 인연'
창문 너머 묵상에 빠진 카롤…소박한 이층집을 가다
소년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Karol Wojtyla)는 이층집 부엌 식탁 의자에 앉아 오른쪽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햇살이 내리쬐는 바도비체 성모마리아 바실리카(basilica·대성전). 하얀 벽면에 새긴 해시계 문구가 카롤의 눈에 들어온다.

"시간은 흐르나 영원함이 기다리고 있다.

(Czas ucieka wiecznosc czeka.)"
카롤은 이내 묵상에 빠지고 그릇됨 없이 하느님 안에 머무는 일을 생각했다.

내년 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22일 폴란드 남부 바도비체에 있는 그의 박물관을 찾았다.

생가가 보존된 박물관을 둘러보며 카롤의 어린 시절 설명을 접하니 그가 식탁 의자에 앉아서 했을 일들이 떠올랐다.

생가는 바도비체 광장 부근에 자리한다.

2014년 박물관으로 단장해 개방된 공간에는 교황의 어린 시절 모습이 고스란히 남았다.

1920년 5월 18일에 태어난 그는 이 집에서 18세가 될 때까지를 보냈다.

어머니를 9살에 잃었으니 아버지와 함께 또 다른 9년을 산 셈이다.

창문 너머 묵상에 빠진 카롤…소박한 이층집을 가다
카롤의 집 현관을 들어서자 그가 가족과 함께한 아담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카롤 어머니가 쓰던 유품과 가족사진들은 유리 상자에 온전히 보존돼 있었다.

손으로 만든 냅킨, 목걸이에 다는 금속 장식, 식탁용 식기 등.
그와 가족사진은 디지털 앨범으로도 전시돼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어린 시절 책을 좋아하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 지냈다고 알려졌다.

그가 책에 빠지게 된 데에는 아버지 영향이 컸다고 한다.

퇴역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독서에 집중했고, 그런 모습을 카롤은 보고 배웠다고 한다.

책을 사랑한 부자를 기억하듯 거실에는 오래된 책장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거실을 넘어서니 왼쪽으로 침대 2개가 나란히 놓인 방으로 연결됐다.

어린 카롤이 잠자리에 들었을 왼쪽 침대 아래로는 기도대가 벽면과 마주하고 있었다.

생전 요한 바오로 2세는 새벽이 다가온 여러 날을 기억했다고 한다.

창밖이 밝기 전 기도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느님을 향해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창문 너머 묵상에 빠진 카롤…소박한 이층집을 가다
방 너머로는 카롤 가족이 한자리에서 모였던 부엌이 보인다.

매일같이 그를 묵상에 잠기게 한 3인용 식탁도 창문 아래 놓여있었다.

그 반대편으로는 커다란 성수통이 벽에 고정돼 있다.

원래 집 출입문은 성수통 오른쪽에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현관을 통해 소중한 집을 들어온 뒤 성수로 예를 갖췄을 것이다.

소년 카롤은 18세가 되자 바도비체의 집을 떠나 크라쿠프로 향한다.

이곳에 있는 야겔로니카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지만, 행복한 학창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대학은 폐쇄됐고 그는 독일로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광산으로 떠난다.

이곳에서 그는 광부이자 공장 인부였다.

박물관에는 그가 교황이기 전 평범한 청년이었음을 보여주는 여러 흔적이 남아있다.

전시대에 걸린 광부 작업복에선 그 또한 한때 노동자였음을 알 수 있다.

총 4개 층 1천200㎡ 규모의 박물관에서는 생가 외에도 그의 유년, 사제 시절, 교황에 오른 가톨릭 지도자로서 모습을 연대기 형태로 볼 수가 있다.

1941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그는 시신 곁에서 12시간을 보내다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듬해 크라쿠프의 지하 신학교에서 비밀 사제수업을 받았고 이때 지하 극단인 '랩소디 극장'을 후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문 너머 묵상에 빠진 카롤…소박한 이층집을 가다
1945년 전쟁이 끝나자 카롤은 신학 공부를 계속해 1946년 사제품을 받고 본격적인 성직자의 길을 걷는다.

로마 유학을 거쳐 1958년 크라쿠프 보좌주교, 1964년에는 크라쿠프 대교구장, 1967년 추기경에 각각 오른다.

카롤이 교황에 오른 것은 1978년 10월. 그는 교황에 오른 뒤로 104차례 해외 순방을 다녔다.

이탈리아뿐만 여러 대륙을 오가며 자신을 기다리던 신자들과 만났지만, 한때는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981년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는다.

이날은 가톨릭에서 말하는 파티마 성모 축일이었다.

저격범이 쏜 총알 두 발 중 하나는 그의 복부를 관통하고 나머지는 심장을 비켜 갔다.

수술과 오랜 치료 끝에 회복한 요한 바오로 2세는 1983년 성탄절 로마 교도소를 방문해 자신을 노린 저격범을 만나 용서한다.

후에는 그의 석방을 탄원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과 인연도 각별하다.

1984년 5월 역대 교황 중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식과 한국 103위 순교자 시성식을 집전했다.

창문 너머 묵상에 빠진 카롤…소박한 이층집을 가다
그는 한국에 도착했을 당시 비행기에서 내려 땅바닥에 입을 맞추고는 방한 인사로 '벗이 있어 먼 데로 찾아가면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 구절을 한국어로 전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89년 10월에는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맞아 한국을 두 번째로 찾았다.

65만명이 운집한 여의도광장에서 남북화해를 염원하는 평화 메시지를 낭독했다.

한국 천주교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놓고 한국 교회의 비약적인 성장에 큰 영향을 줬다고 평가한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박물관에는 방한의 역사가 기록돼 있다, 한국에서 가져온 흙이 다른 방문국가의 흙과 나란히 박물관 바닥 강화유리 안에 전시돼 있다.

또 벽면을 장식한 기념품 중에는 한국 천주교에서 전달한 등이 보관돼 있다.

바도비체 광장에도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을 알리는 연도가 석판에 새겨져 있다.

창문 너머 묵상에 빠진 카롤…소박한 이층집을 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