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테보리도서전 초청…"'설계자들' 해외진출, 국력 세진 덕분"
북유럽스릴러 본고장 찾은 김언수 "콘텐츠 핵심은 이야기"
스웨덴은 북유럽 스릴러를 대표하는 나라다.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스릴러물 전통을 이어온 스웨덴은 1억부가 팔린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등으로 세계적인 스릴러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스웨덴에 지금까지 번역된 한국문학 작품은 33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소설이 있다.

지난해 현지에 출간된 김언수의 범죄스릴러 '설계자들'이다.

살인청부업자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지금까지 24개국에 번역 출간됐다.

국내 문단에서 주목받는 이야기꾼이자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김언수가 예테보리국제도서전 참석차 스웨덴을 찾았다.

예테보리도서전 측은 주빈국인 한국에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과 함께 김언수의 참가를 특별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7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난 김언수는 '설계자들'의 연이은 해외 진출에 대해 "국력이 세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에 갔을 젊은이들을 보니 BTS의 나라에서 왔다고 내 책을 사가더라. 농담 같지만 진짜"라며 "책이란 한 나라의 문화를 파는 것인데, 우리나라 브랜드가 안 알려졌다가 문화 국력이 커지고 어느 발화점을 넘어서면서 팔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K-팝을 비롯해 한식과 드라마, 영화 등이 세계로 뻗어 나가며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 문학도 점차 지평을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2002년 등단한 김언수가 2010년 펴낸 두 번째 장편 '설계자들'은 미국 펭귄랜덤하우스의 자회사 더블데이에 억대 판권료로 판매됐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 해외 유력 매체들이 호평을 보냈다.

프랑스에서는 2016년 추리문학대상 후보에 올랐다.

국내외에 영화 판권도 판매됐다.

부산을 배경으로 조폭들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 '뜨거운 피'도 국내에서 영화로 개봉될 예정이다.

'고래'의 작가 천명관의 감독 데뷔작이다.

김언수는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우리나라의 문인 데뷔 코스를 밟은 작가지만, 한국 문단의 현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는 "우리 문단은 신춘문예 당선을 위해 단편에 집중하는데, 단편은 이야기 시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다"며 "한창 글을 쓸 시기에 단편만 쓰면 '장편 근육'이 붙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김언수도 등단 후 장편에 도전해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설계자들'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는 "콘텐츠 산업의 핵심은 이야기이고, 이야기 산업은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다"며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야기 전문가가 없고 소설가들은 가난하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은 장편을 써서 작가가 되지만 우리는 신춘문예를 위해 단편으로 시작하고, 장편을 쓸 때쯤에는 진이 다 빠져있다"고 덧붙였다.

김언수는 이번 도서전에도 'IT 시대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세미나에서 영상과 소설과 관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미래에 소설가의 입지는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소설은 이야기의 완전체이며, 할리우드 대자본이 요구하기 때문에 소설은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그는 "'왕좌의 게임',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미국드라마가 하찮은가"라며 "내가 읽은 웬만한 소설보다 인간 내면을 더 잘 보여준다.

21세기 셰익스피어는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선이 분명한 한국 문단, 콘텐츠의 원천으로서의 이야기의 가치를 제대로 쳐주지 않는 업계의 인식 전환도 촉구했다.

그는 "소설을 써서 종이를 파는 것은 사양산업에 종사하는 것이지만, 콘텐츠 산업의 소스를 만들겠다고 하면 미래산업에 종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