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투자 4.8조원 규모
지분 50 대 50으로 공동경영
“시장 판도를 주도하는 게임체인저로 도약할 것이다.”(2019년 1월 2일 시무식)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그동안 강조한 말이다. 화두는 늘 미래차였다. 정 수석부회장의 ‘의지’는 1년여 만에 ‘현실’이 됐다. 현대차그룹이 23일 2조4000억원을 들여 미국에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 개발을 위한 합작사를 세우겠다고 발표하면서다. 기업 인수(현대건설) 등을 제외하면 현대차그룹 사상 최대 규모의 외부 투자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방미 기간에 맞춰 투자 계약을 맺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기아차 등 3社 공동 투자
현대차그룹이 손잡기로 한 아일랜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개발 업체 앱티브는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 델파이에서 분사했다. 차량용 전장부품 및 자율주행 전문 기업이다. 아일랜드에 본사를 뒀다. 자율주행사업부는 미국 보스턴에 있다. 구글에서 분사한 웨이모,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인수한 크루즈 등과 함께 ‘글로벌 톱3’ 자율주행 SW 업체로 꼽힌다. 인지시스템 및 SW 알고리즘, 컴퓨팅 플랫폼, 데이터·배전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앱티브 자율주행사업부의 임직원 수는 700명에 달한다. 100대 이상의 자율주행차를 운행 중이다.
합작 투자 규모는 약 4조8000억원이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가 각각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를 투자해 내년 보스턴에 합작사를 세운다. 20억달러는 연산 30만대 규모의 내연기관 기반 완성차공장 두 곳을 지을 수 있는 돈이다. 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가 현금 16억달러(약 1조9100억원)를 내놓는다. 자동차 엔지니어링 서비스, 연구개발 역량, 지식재산권 공유 등 4억달러(약 4800억원) 규모의 현물 투자도 한다. 앱티브는 자율주행 기술 및 지식재산권, 700명에 달하는 개발 인력 등을 합작사에 출자한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는 이날 미국 뉴욕에서 합작사 설립을 위한 본계약을 맺었다. 정 수석부회장은 “자율주행 분야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앱티브와 현대차그룹의 역량을 결합한다면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해 글로벌 자율주행 생태계를 선도해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케빈 클락 앱티브 최고경영자(CEO)는 “최첨단 기술력과 연구개발 역량을 지닌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한 최적의 파트너”라고 치켜세웠다. “2024년 4단계 자율주행 상용화”
합작사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운행 가능한 완전 자율주행 SW 시스템을 2022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이를 글로벌 완성차 및 로보택시 업체들에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현대·기아차는 운전자 조작 없이도 부분 자율주행이 가능한 3단계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하고 있다. 2021년 세종시에서 자율주행 로보택시를 시범 운영하는 등 독자적 모빌리티(이동수단) 서비스 사업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로보택시는 고객이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차를 부르면 자율주행차가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서비스다.
현대차그룹은 운전자 개입 없이 차 스스로 달릴 수 있는 수준인 4단계 기술을 다듬어 2024년까지 상용화할 계획이다. 2030년엔 완전 자율주행차(무인차·5단계)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래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정 수석부회장의 발걸음이 빨라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대·기아차는 2017년부터 다양한 미래 기술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과거 다른 그룹에 비해 외부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전략적 투자에 나서는 추세다. 차량공유 기업 등 분야도 다양해졌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