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주민 요구에 왕산광장·왕산루→산동광장·산동루 변경 반발
소지역 이기주의 지적…"전체 시민 여론조사로 해법 찾아야"
구미 공원시설 명칭 두고 독립운동가·시민단체-주민 갈등
경북 구미지역이 공원 명칭을 두고 독립운동가 문중·시민단체와 주민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다.

아파트 인근 근린공원 이름을 놓고 팽팽하게 맞서는 형국을 빚자 소지역 이기주의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23일 구미시에 따르면 산동면 국가산업4단지 확장단지 내 3만㎡에 물빛근린공원을 조성했다.

구미시는 작년 6월 이전 수차례 주민공청회를 열어 3대에 걸쳐 14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왕산 허위 선생의 이름을 따 공원 내 왕산광장(8천㎡)과 왕산루(누각), 독립운동가 14인의 동상을 배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취임한 장세용 구미시장이 "기념사업을 태생지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명칭 변경 분위기가 조성됐다.

산동면 주민 350명도 구미시에 진정서를 내고 "명칭을 산동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구미시는 시장과 주민 의견을 반영해 올해 6월 물빛공원은 산동물빛공원, 왕산광장은 산동광장, 왕산루는 산동루로 명칭을 변경했다.

독립운동가 14인의 동상은 임은동 왕산기념관에 설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주민공청회에서 결정한 사안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주민이 진정서를 제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번복한 것이다.

산동 주민들은 "아파트 밀집지역 내 근린생활공원인데 굳이 광장·누각 명칭을 독립운동가 이름으로 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했다.

구미 공원시설 명칭 두고 독립운동가·시민단체-주민 갈등
그러나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와 구미경실련은 "구미의 역사성을 살리는 취지로 주민공청회에서 왕산 선생의 이름을 따 명칭을 정했는데 시장과 일부 주민 의견을 근거로 명칭을 변경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허위 선생의 친손자이자 장손인 허경성(93) 옹 부부도 명칭 변경에 반발해 구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허 옹은 "임은동 왕산기념관은 접근성이 떨어져 주민과 학생이 많은 물빛공원에 일부 기념시설을 배치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왕산 허위(許蔿·1855∼1908) 선생은 1908년 의병투쟁으로 일제에 의해 사형을 당한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이자 독립운동의 선구자다.

게다가 허위 선생의 형제와 자녀 등 무려 14명이 독립운동가인 국내 최고·최대의 독립운동가 집안이란 점을 고려하면 구미시가 신중하게 대처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 시장은 지난 20일 1인 시위를 하러 온 허 옹 부부를 시장실에서 만나 15분 동안 고성을 지르고, 접견실로 이동한 자리에서 '욕설 논란'에 휩싸인 점 등도 큰 결례로 보인다.

허 옹에 따르면 시장실에 들어갔지만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아 15분 이상 서서 장시장의 일방적인 설명을 들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전병택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장이 "주민공청회 결정 사안을 너무 쉽게 뒤집은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 점에서 구미시는 민주주의 절차를 다시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청회 결정 사항을 변경하려면 산동면 일부 주민만이 아닌 구미시민 전체의 의견을 다시 수렴하는 절차 등을 거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미 공원시설 명칭 두고 독립운동가·시민단체-주민 갈등
구미 모 대학 교수는 "구미시는 허위 선생 문중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시민 여론조사 등을 거쳐 소지역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