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못 봤지만 손녀라고 생각"…암 투병 중에도 편지 교환
십수년간 후원했던 필리핀 아동 성인 되고 자립
14년간 편지 209통 교환…필리핀 아동 후원한 윤영희 할머니
"도움에는 나이가 상관이 없어요.

저도 예순이 넘어 후원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한 아이를 키워냈잖아요.

"
한국컴패션을 통해 16년째 해외아동을 후원하고 있는 윤영희(77) 할머니는 3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인 윤 할머니가 처음 해외아동 후원을 시작한 것은 2003년, 교회를 통해서였다.

컴패션은 전 세계 25개국에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과 결연해 자립 가능한 성인이 될 때까지 후원하는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다.

정기 후원금은 매월 4만5천원이다.

이 돈은 후원받는 어린이가 등록된 어린이센터를 통해 그 아이의 한 달 양육비로 사용된다.

윤 할머니가 처음 후원을 시작한 아이는 인도 어린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후원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아이는 선천적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어 윤 할머니는 2005년 당시 7세이던 필리핀 여자아이 클레어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4년 동안 클레어와 총 209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후원 관계를 이어갔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다 보니 윤 할머니가 한글로 편지를 써 컴패션에 보내면 자원봉사자가 이 편지를 영어로 번역해 클레어에게 보냈다.

클레어가 답장을 보내면 역시 컴패션에서 번역해 윤 할머니에게 전달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편지를 한 번 주고받는데 보통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사정이 있을 때는 답장을 못 한 편지가 3∼4통씩 쌓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둘의 편지는 14년간 끊기지 않았다.

두 사람은 편지로 서로를 격려했다.

윤 할머니는 클레어가 막내 손녀와 나이가 비슷해 클레어를 손녀로 생각한다고 적었고, 클레어도 윤 할머니를 할머니라 부르며 소통했다.

위기도 있었다.

윤 할머니는 2012년에 요관암 수술을 받았다.

윤 할머니는 당시 클레어가 편지로 힘을 주고 기도로 응원해 준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4년간 편지 209통 교환…필리핀 아동 후원한 윤영희 할머니
윤 할머니는 자신이 클레어를 일방적으로 도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4년 넘게 소통하면서 저도 클레어에게 많은 도움과 위로를 받았어요.

클레어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친손녀처럼 생각해요.

"
이렇게 이어지던 두 사람의 편지는 지난 6월 종료됐다.

21세가 된 클레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도 해 컴패션 양육 프로그램을 끝냈기 때문이다.

클레어는 마지막 편지에서 "할머니와 대화가 끊기는 것이 두렵지만 이제 성장하고 삶을 마주해야 하는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면서 항상 감사하고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적었다.

윤 할머니는 클레어에게 "나도 섭섭하지만, 그동안 많은 위로를 받았다"며 "어디서든 축복하고 꿈을 잘 키워나갈 것을 믿는다"고 답했다.

윤 할머니는 이제 다음 후원 어린이와의 인연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해외 아동을 후원하기에 앞서 국내 아동부터 도와야 한다는 지적을 한다.

하지만 윤 할머니는 "생명에는 국경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 생명을 구하고 키우는 일은 인생에서 아주 크고 보람된 일입니다.

힘이 닿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만큼 후원을 하고 싶어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