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 권기일 선생 만주서 독립운동하다 일본군에 참살돼
"남은 건 후손들의 지독한 가난, 그러나 원망은 안 해"
독립운동가 후손 권대용씨 "성숙하고 냉정한 자세로 극일하자"
"일본 제국주의가 싫은 거지 그 나라 국민을 싫어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
항일 독립운동가 후손인 권대용(71·경북 안동시)씨는 한국과 일본이 최근 겪고 있는 갈등을 성숙하고 슬기로운 자세로 극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차분히 전했다.

권씨는 "대다수 우리나라 사람들과 마음을 같이하는 일본 사람들이 있는 만큼 그들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제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조상을 생각하면 쉽게 하기 힘든 말일 것도 같은데 권씨는 시종 담담했다.

그는 "우리의 원수라고 하면 일본제국주의와 그 향수에 젖은 일부 정치인들 아니겠느냐"고 반문한 뒤 "일본 국민을 적이 아니라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권씨는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의 산증인이다.

독립운동가 후손 권대용씨 "성숙하고 냉정한 자세로 극일하자"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직후인 1912년 초 권씨의 할아버지인 추산 권기일(權奇鎰·1886∼1920) 선생은 가족을 거느리고 안동을 떠나 만주로 향했다.

천석꾼 소리를 듣던 부자였으나 나라를 빼앗긴 분을 참지 못하고 전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추산은 만주에서 경학사와 부민단 등 독립운동을 위한 교육기관을 운영하다 1920년 8월 15일 신흥무관학교 부근 수수밭에서 일본군 총칼에 무참히 희생됐다.

그의 나이 34살이었다.

추산은 뒤늦게 대통령 표창(1963년)과 건국포장(1977년), 건국훈장 애국장(1990년)을 차례로 추서받았다.

그러나 그가 독립운동에 모든 걸 바친 결과는 후손들의 지독한 가난뿐이었다.

독립운동가 후손 권대용씨 "성숙하고 냉정한 자세로 극일하자"
만주에서 태어난 추산의 아들은 갖은 고생 끝에 광복 후 안동으로 돌아와 손수레를 끌며 간장을 팔아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권씨는 돈이 없어 학업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중학교 1학년을 휴학한 뒤 돈벌이에 나섰고 결국 학교 문을 다시는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조상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몇 해 전까지 개인택시 기사로 일해 온 그는 최근 광복회 대의원을 맡아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권씨는 "나라를 빼앗긴 고통을 겪은 게 불과 100년 남짓밖에 안 됐으니 분한 마음이야 쉽게 없앨 수 있겠느냐"며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제는 선진국에 다가선 만큼 성숙하고 냉정한 자세로 극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