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까지 아주 작은 미사일 시험이라고 하면서 주권국가로서 우리의 자위권을 인정했는데….”

북한 외무성이 지난 11일 권정근 미국담당국장 명의로 낸 담화의 일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0일 트위터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는)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한 작은 사과였고, 이런 시험은 (한·미) 훈련이 끝나면 중단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고 밝힌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미사일·방사포 발사 도발의 명분으로 삼았다. 청와대를 향해선 “그렇게도 안보를 잘 챙기는 청와대니, 새벽잠을 제대로 자기는 글렀다”고 빈정거렸다. 지난해 4·27 판문점 남북한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리 (미사일 도발) 때문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제가 확인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내용을 비틀었다.

‘새로운 통미봉남(通美封南: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협상)’이 시작됐다. 북한은 대놓고 “대화는 조·미(북·미) 사이에 열리는 것이지 북남 대화는 아니다”고 선언했다. 과거의 통미봉남 주체는 북한이었다. 이젠 미국도 있다. 정확히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에게 한·미 동맹은 이익이 없다면 언제든 깰 수 있는 ‘거래’일 뿐이다. 얻을 이득이 있다면 3대 세습 독재자에게도 거침없이 악수와 면죄부를 내민다. 북한의 미사일 사거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미국의 국익을 해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오는 20일 ‘후반기 한·미 연합지휘소 훈련’이 끝나면 곧장 미·북 협상 재개를 발표할 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일정도 정해지지 않은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을 앞두고 동맹국인 한국을 조롱하듯 농담했다. 그는 9일 한 대선 자금 모금 행사에서 “브루클린의 임대 아파트에서 월세 114달러를 받아내는 것보다 한국으로부터 10억달러(약 1조2148억원)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말했다. 방위비 분담금을 아파트 월세에 비유하며 증액 압박에 성공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남북을 오가며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이름으로 ‘거래의 민낯’을 거리낌없이 드러낸 미국 대통령은 없었다. 북한으로부터는 역사적 이벤트를, 한국으로부터는 돈을 얻으려 한다. 분단의 현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겐 ‘최고의 무대’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한과 미국에 침묵으로 일관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청와대엔 ‘운전자론’ 주장에 걸맞은 힘있는 행보와 구체적인 대응을 촉구한다. 그렇지만 정부는 핵과 미사일을 보유한 북한과 세계 최강 미국 사이에서 갈 곳을 잃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