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택시 상생한다는데 발목잡는 정부
각종 모빌리티(이동수단) 서비스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또 벽에 부딪혔다. ‘기존 산업 보호’라는 미명 아래 정부가 몸을 사려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한 정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빌리티 스타트업인 딜리버리T는 지난 4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했다. 택시를 이용한 소화물 배송 서비스가 이 업체의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물건을 배송하고자 하는 사람이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배송물품 정보를 입력하면 인근에 있는 택시를 즉시 배차해 주는 서비스다.

딜리버리T는 택시의 소화물 배송에 대한 근거와 운송 기준을 정한 현행법이 없어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했다. 돌아온 것은 유관 부처 국토교통부의 반대였다. 화물연대와 퀵서비스협회 등이 반대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화물은 화물차가 싣고, 여객은 택시가 싣는 현행 체계가 흔들리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최근까지도 이런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남승미 딜리버리T 대표 의견은 다르다. “정부 논리는 유휴자산을 적극 활용한다는 공유경제의 기본원리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에 신청한 규제샌드박스의 임시허가 대신 사업 범위를 제한하는 실증특례로 변경해 다시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딜리버리T와 손잡은 택시업계도 규제샌드박스 통과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윤석범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회장은 “택시의 수송분담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고 ‘타다’ 등으로 인해 택시기사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며 “(정부가) 새로운 수익 창출 길을 막으면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는 약 2만6000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정부가 모빌리티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승객의 자발적인 동승을 중개하는 ‘반반택시’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코나투스도 첫 규제샌드박스 심의에서 고배를 마셨다. 재도전 끝에 승차난이 심각한 지역과 심야에만 서비스한다는 조건 아래 겨우 실증특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기득권 눈치를 보는 정부 태도에 규제샌드박스라는 새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산업 보호 논리만 반복한다면 기업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소비자 편익이 새 서비스의 궁극적인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