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멥신·신라젠 CB 1000억대
주가 상승 기대했던 투자자들
급락장에 전환가 밑돌자 혼란
코스닥 바이오기업인 파멥신은 지난 5월 31일 CB를 발행해 연구개발비 1000억원을 마련했다. 신라젠(1100억원)에 이어 올해 제약·바이오기업의 CB 발행 중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1년 후 주식 전환가격이 6만7389원으로 발행 당일 주가(6만2500원)보다 높았음에도 투자자들은 신약 개발 성공에 따른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5년간 무이자 조건으로 CB를 사들였다. 이 회사는 항체신약 항암제인 ‘타니비루맵’에 대한 글로벌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파멥신 주가는 CB 발행 후 3개월여간 48.6% 추락하며 3만2100원(8일 종가)까지 주저앉았다. 이날 8.81% 반등했지만 전환가격 조정 한도인 4만7172원에 한참 못 미친다.
파멥신처럼 발행한 지 1년도 안 돼 저금리 채권으로 전락한 CB가 속출하고 있다. 에이치엘비생명과학(600억원)과 에이치엘비(400억원), 메디포스트(400억원), 이수앱지스(400억원) 등 올해 대규모 CB를 발행한 제약·바이오기업 주가가 전환가격 조정 한도 아래로 떨어졌다. 메디포스트와 에이치엘비(31회차 200억원)는 전환가격을 최저한도인 3만2490원, 5만7253원까지 낮췄음에도 주가가 그 밑으로 뚫고 내려갔다. 지난 5거래일간 시가총액이 2조원 이상 증발한 신라젠(1만4650원) 역시 최저한도까지 낮춘 CB 전환가격(4만9078원)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제약·바이오기업 CB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는 평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장 제약·바이오기업(코넥스 포함)이 발행한 CB 53건 중 44건의 전환가격이 발행기업의 현재 주가보다 높다. 전환가격 최저한도가 주가보다 높은 CB도 29건이다. 이 중에서 무이자 CB가 17건에 달할 정도로 저금리로 발행된 CB가 대부분이다.
혼란에 빠진 투자자들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을 노렸지만 투자심리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한동안 제약·바이오주의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워져서다. 만기가 도래했을 때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바이오기업 중에선 현재 개발 중인 신약이 출시되거나 신약 관련 기술수출이 이뤄진 뒤부터 이익이 나는 곳이 적지 않다. 코스닥 대형주인 신라젠조차 장기간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 3월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870억원으로 CB 발행금액보다 적다.
이런 이유로 투자자들의 조기상환 요구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투자전략담당 임원은 “주가도 금리도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을 고려하면 조기상환 청구가 가장 합리적인 대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조달 길 막히나
국내 증시마저 꽁꽁 얼어붙으면서 제약·바이오기업의 자금조달 길이 험난해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수출규제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무역·환율전쟁까지 증시 분위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지난달 1일 2129.74였던 코스피지수는 한 달 만에 200포인트가량 하락하며 8일 1920.61까지 내려앉았다. 코스닥지수는 같은 기간 696.00에서 585.44로 떨어졌다.
제약·바이오주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는 평가다. 8일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주요 바이오주로 구성된 ‘KRX300 헬스케어’ 지수는 1980.43으로 지난달 초 대비 25.5% 하락했다.
김진성/양병훈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