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역협회는 2일 서울 삼성동 협회 중회의실에서 ‘바이오·화장품 분야 일본 수출규제 업계 설명회’를 열었다. 한 참석자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무역협회는 2일 서울 삼성동 협회 중회의실에서 ‘바이오·화장품 분야 일본 수출규제 업계 설명회’를 열었다. 한 참석자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 정부도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기로 함에 따라 기업들은 ‘이중고’를 겪게 될 전망이다. 국내 기업이 일본으로부터 핵심 소재와 장비를 수입하기 힘들어진 데다 일본으로 제품을 수출하기도 어려워진다. 일본은 한국의 ‘3위 수입국’이자 ‘5위 수출국’이다.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는 이날 공동 발표한 ‘경제계 입장’에서 “일본 정부의 결정은 외교적 사안을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보복한 것”이라며 “한·일 경제와 교역 전반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기차 배터리 회사들, ‘파우치’ 확보전

국내 산업계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은 일제히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했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전기자동차 배터리 제조사는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 명단에 파우치가 포함됐는지 파악에 나섰다. 일본 정부가 관리하는 전략물자가 1120개에 달하고, 정확한 제품명이 아니라 포괄적 이름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규제 품목에 해당하는지 구분하기 힘들다. 전기차 배터리의 4대 핵심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은 국내 생산이 가능하고 일본 의존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배터리 셀을 감싸는 파우치는 일본의 DNP와 쇼와덴코로부터 100% 들여오고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를 비롯해 중국, 대만 회사들을 상대로 대체 공급처를 물색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BTL첨단소재와 율촌화학 등이 파우치를 생산한다.

장기화 땐 자동차·항공도 ‘영향권’

일본의 수출규제가 장기화화면 자동차, 항공 등의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의 수소연료 저장용기 원료(탄소섬유)는 한국에 있는 일본 도레이의 자회사인 도레이첨단소재가 공급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도레이의 탄소섬유를 이용해 미국 보잉의 B787 드림라이너 항공기 동체와 날개 일부를 제작한다.

자동차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에 쓰이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도 일본 무라타제작소와 TDK가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핵심 장비인 초정밀 카메라에 들어가는 광학렌즈 원천기술도 일본이 보유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공장에서 사용하는 공작기계 등도 일본산이 많다. 공작기계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인 ‘공작기계 수치제어반(NC)’은 일본 화낙의 한국 시장 점유율이 90%에 달한다. 업체 관계자는 “소프트웨어를 현대위아나 지멘스 제품으로 바꾸면 전체적으로 설비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탄소섬유 공급 끊기면…수소차 '넥쏘'·KAI 항공기동체 생산 차질
정유·화학·철강 등은 대일 수출 타격

정유와 화학, 철강, 조선 등은 일본 수출에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원유(정유·화학)와 철광석(철강) 등 원자재를 일본에서 거의 수입하지 않고 있지만 일본으로의 수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키로 한 조치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일본 수출이 가장 많은 품목은 석유제품으로 52억1400만달러(약 6조2600억원) 규모다. 이어 철강판(21억달러), 정밀화학원료(12억달러) 등의 순이다.

일본 수출 4위 품목인 반도체도 매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일본 가전업체에서 올리는 반도체 매출은 전체 반도체 판매액의 10%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액으로는 4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소니 등 고화질 TV를 제조하는 가전업체는 패널 상당량을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등 한국 업체로부터 조달한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이날 “(일본의 수출 규제 확대가) 한국 기업 신용도에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무디스는 “이런 국면이 장기화할 경우 한국 기업의 피해는 중대한 수준이 될 것”이라며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산업은 생산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재후/김보형/박상용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