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장근로·재량근로제 적극 활용…노동계 "기업 민원 다 들어주나"
[한일 경제전쟁] 기업 비상경영 총력지원…주52시간제 예외 확대 추진(종합)
일본이 2일 수출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해 다수의 국내 기업이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감에 따라 정부는 이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주 52시간제 예외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노동시간 단축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어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한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이 필요한 업체에 대해) 특별연장근로의 인가 및 재량근로제의 활용을 적극 도모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특별연장근로는 자연재해와 사회 재난 등을 당한 기업이 사고 수습을 해야 할 경우 노동자 동의와 노동부 인가를 받아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를 넘겨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재량근로제는 업무 수행 방법을 노동자에게 위임할 필요가 있는 전문적·창의적 업무의 경우 사용자가 노동자 대표와 서면 합의로 정한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간주하는 제도로, 노동자의 실제 노동시간은 법정 한도를 넘을 수 있다.

정부가 일본의 수출 규제로 피해를 보는 기업이 특별연장근로와 재량근로제를 활용해 주 52시간제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의 소재와 부품 등을 수입해온 기업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로 이를 조달할 수 없어 국산화에 나서거나 수입처를 바꿔야 할 경우 주 52시간제를 준수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한 조치다.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R&D)과 대체 품목 도입을 위한 테스트 등 일부 업무의 경우 일정 기간 집중 노동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따라 수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는 전략물자는 1천194개 품목에 달하는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정부는 이 가운데 국내에서 사용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이번 조치의 영향이 크지 않은 품목을 제외한 159개 품목을 관리 대상으로 정해 대응에 착수했다.

[한일 경제전쟁] 기업 비상경영 총력지원…주52시간제 예외 확대 추진(종합)
업계에서는 소재와 부품 등의 일본 의존도가 높은 ICT(정보통신기술), 공작기계, 전기차 배터리, 자동차 부품 등의 업종에 속한 기업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 규제 영향을 받는 기업의 명단이 나오면 특별연장근로 허용 여부 등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지난달 초 일본이 에칭 가스를 포함한 3개 품목의 수출을 규제한 1차 보복 조치로 피해를 본 기업에 대해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기로 한 상태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사회 재난에 준하는 사고'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특별연장근로 허용 방침을 밝히며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게 되면 이와 관련해 이런 물질(수출 규제 대상 품목)이 또 있나 봐야 한다"며 특별연장근로를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노동부는 지난달 31일에는 재량근로제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재량근로제 운용 가이드라인도 발표했다.

기업이 재량근로제의 내용을 잘 몰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보고 지침을 명확히 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한 것이다.

노동계는 정부가 일본의 보복 조치를 이유로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하나둘 확대하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위기를 빌미로 기업의 민원을 다 들어주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입장문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핑계로 유연근무제를 확대 도입하는 것은 장시간·저임금 노동체제를 유지하는 꼼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일본 수출 규제 대응이 재벌의 민원 해결의 장이 돼서는 안 된다"며 "경제 상황이 어려울수록 노동자의 노동권은 보호돼야 하며 재벌 중심의 경제 체질을 바꾸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