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 전 시험가동 중 사고…"많은 비로 자동으로 수문 열려 빗물 배출"
현장에 안전장비 안 갖춰…"저류·배수 터널이라 튜브 같은 거 없어"
양천구-시공사 현대건설 '수문 조작 권한' 놓고 책임 공방
목동 수몰사고 '인재' 논란…"수문개방, 지하에 알릴 길 없었다"(종합2보)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 배수시설 공사장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작업자들은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현장 점검에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건설 현장에서의 안일한 대응이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전형적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당국과 관계사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24분께 서울 양천구 목동의 빗물 저류시설 수로의 유지관리 수직구 인근에서 작업자 3명이 고립됐다.

이 가운데 협력업체 직원인 구모씨는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함께 작업하던 현대건설 직원 안모씨와 미얀마 국적 협력업체 직원 등 2명은 실종된 상태다.

피해자들은 이날 일상 점검 업무를 위해 지하 40m 깊이의 수로에 들어갔다가 폭우로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해 고립된 것으로 파악됐다.

발주처인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에 따르면 협력업체 작업자 2명이 터널 안으로 들어간 것은 오전 7시 10분께다.

이들은 터널 내 전선 수거 방법 파악을 위해 터널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목동 수몰사고 '인재' 논란…"수문개방, 지하에 알릴 길 없었다"(종합2보)
폭우로 인해 저지1수직구와 고지수직구에 있는 2개의 수문이 열린 것은 각각 오전 7시 40분과 오전 7시 44분이다.

이들 수문은 하수관로 수위의 50%와 60%가 차오르면 자동개방되도록 설정된 것으로 조사됐다.

매뉴얼 상에는 70% 상태에서 개방되도록 돼 있지만 시운전 상황에서 하향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수문이 열리면서 터널 안으로 약 6만t의 물이 쏟아져 내렸고 수심은 4m 안팎으로 급상승한 것으로 도시기반시설본부는 추정했다.

폭우가 내리며 수문 개방이 예고됐지만, 작업자들은 미처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양천구는 오전 7시 31분 시운전 업체, 7시 38분 현대건설에 수문개방 예정을 통보했다.

수문개방 통보를 받은 현대건설은 오전 7시 43분 현장 내 상황을 전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현대건설 직원 1명은 앞서 들어간 작업자들을 대피시키려 7시 50분께 터널에 들어갔다가 그 역시 실종되고 말았다.

119에 구조 신고가 접수된 것은 오전 8시 24분께였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수문 개방 사실이 통보됐는데도 작업자들에게 전파가 안 된 이유에 대해 "기술적으로 시공 상황에서는 상부에서 하부로 전달 가능한 연락망이 없다"며 "그래서 2인 1개 조 이상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문을 수동으로 닫을 수 있는데도 닫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 부분은 파악해보겠다"고 이 관계자는 답했다.

또 비가 오는 상황에서 작업자들이 터널 내부에 들어간 데 대해 "통상적으로 매일 기상청 예보를 확인하고 있다.

비가 오는 것은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작업자들이 최초에 터널에 들어갈 당시에는 호우주의보가 없었다는 게 현대건설 측 설명이다.

도시기반시설본부 관계자는 "서울시 수난 대책본부에서 (호우주의보) 발령을 내리면 공사장에 전파하고 있다"며 "오전 7시 30분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져 각 공사장에 전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이날 오전 7시 30분 서울과 경기 광명·시흥·부천·가평·구리·남양주에 호우주의보를 발효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5시 기상청이 서울 지역에 이틀간 5∼4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한 점을 감안하면 대처가 미흡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목동 수몰사고 '인재' 논란…"수문개방, 지하에 알릴 길 없었다"(종합2보)
사고 현장에는 튜브 등 안전 장비도 없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물을 받기 위한 저류 배수 터널이라 공사 중에도, 공사 후에도 튜브나 이런 것은 배치가 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위험한 작업을 강행했다는 점에서 인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사고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는 양천구와 시공사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듯한 모습을 보여 현장을 지켜보던 실종자 가족이 반발하기도 했다.

빗물을 수로로 흘려보내게 한 '수문 개방'에 대해 현대건설 측은 "양천구청의 연락을 받고 수문이 열리는 것을 시스템을 통해 확인했지만 수문을 닫을 권한이 없고 작동법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천구청은 "현대건설 직원이 수문을 조작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조작 권한이 없다는 것은 와전된 것"이라며 "공사가 완료되기 전에는 양천구와 현대건설이 공동으로 시설 운영권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장에 있던 실종자 가족은 "수문을 닫아야 하는데 서로 어떤 조치를 해야겠다는 소통을 하지 않은 것인가"라며 "인명이 달린 문제인데 상황실을 운영하는 업체나 구청이나 현대건설이 다 따로 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사고 현장을 방문한 박원순 시장은 "시장으로서 사망자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사과와 위로 말씀드린다"며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해 실종자를 이른 시간 안에 구조하는 게 급선무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고 원인을 정확히 규명해서 책임을 가리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없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고는 2013년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몰 사고의 재연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3년 7월 15일 노량진 배수지 지하 상수도관 부설작업 현장에서는 한강 수위 상승으로 갑작스럽게 쏟아져 들어온 강물에 휩쓸려 작업하던 근로자 7명이 모두 숨졌다.

당시 공사 관계자들은 터널 안에서 근로자들이 작업 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작업 중지 지시를 내리지 않고 작업을 강행하는 등 안일한 대응이 인명피해를 키운 것으로 조사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