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의 데스크 시각] 코리아 디스카운트 키우는 정치
한국 기업의 시장 가치가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낮게 평가받는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증시에 새겨진 주홍글씨다. 한국 시장에 이런 낙인이 생긴 이유는 복합적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그로 인해 운명적으로 파생된 남북한 간 지정학적 리스크는 한국 시장 특유의 위험 요소다. 그래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기업이 부담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단 비용이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기업 지배구조의 후진성이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받기도 했다. 지배구조가 불투명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에 투자를 꺼린다는 지적이었다. 이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정권마다 추진하는 재벌개혁의 주된 명분이 됐다.

불확실성에 휩싸인 증시

노사 문제도 한국 기업의 가치를 낮추는 이유로 꼽힌다. 노사 문제가 기업 성장을 막고 경영 불확실성을 높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이 낮다는 분석이다.

최근 증시를 흔드는 건 한·일 무역전쟁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주식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일본 수출규제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넘어 자동차 화학 기계 철강 등 전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과거사로 촉발된 양국 갈등이 경제보복으로 비화된 데는 정치·외교의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부실한 합의로 위안부 문제를 봉합하려 했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뒤집었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가 이런 상황을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면서 초유의 한·일 무역전쟁이 촉발됐다. 70여 년 전의 위안부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경제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그 여파로 증시가 시퍼렇게 멍들고 있다. 무능한 정치·외교가 주식시장을 퍼렇게 물들인 2016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의 데자뷔다.

정치·외교 리스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키우는 사례는 중국의 사드 보복이나 일본의 무역 도발뿐만이 아니다. 기업에 대한 정치적 압박도 한국 시장의 디스카운트 요인이다.

"제발 이젠 경제를 놓아달라"

적폐로 내몰린 삼성은 지난 1년 새 수십 차례의 검찰 압수수색을 당했다. 죄명도 뇌물, 횡령, 해외 재산도피, 분식, 증거 인멸 등 다양하다. 해외 투자자들의 눈으로 보면 범죄집단에 가깝다. 일부 여당 의원은 국회에서 “정말 분통 터진다.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회사가 일본 업계를 1위로 띄워올리는 역할을 했다”고 성토했다. 이처럼 일본의 무역보복까지 오히려 피해자인 삼성의 책임으로 돌리는 게 정치권의 행태다.

경제 문제를 정치 공학으로 풀려는 시도도 산업 불확실성을 키워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한다. 정부가 내놓은 택시업계와 카풀의 상생방안이 그렇다. 혁신성장과 사회적 대타협을 내세우며 택시업계와 새 모빌리티(이동수단)업계 간 상생방안을 제시했지만 정치적 타협의 산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 제발 정치가 경제를 좀 놓아달라”고 호소했다. “규제 법안은 경쟁하듯 속속 보태지고, 기업은 일부가 지은 잘못 때문에 제대로 항변조차 하기 조심스럽다”는 토로였다.

증시도 아우성이다. “이제 제발 정치가 시장의 발목을 잡지 말아달라”고. 3류 정치가 발목을 잡으면 경제도, 시장도 3류로 떨어진다. 정치 경쟁력이 개선되지 않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한국 증시의 ‘오명’을 씻을 수 없다.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