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시청각 중복장애인 지원센터 연 밀알복지재단 정형석 대표
"지원 사각지대…'헬렌켈러법' 반드시 입법해 별도 지원해야"
"시각+청각장애 어려움은 더하기 아닌 '곱하기'…입법 꼭 필요"
"시청각 중복 장애인의 어려움은 단순히 '시각 더하기 청각'이 아니라 둘의 '곱하기' 수준으로 생각해야 해요.

세상과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전혀 다른 장애입니다.

"
지난 4월 국내 첫 시청각 중복 장애인 지원센터 '헬렌켈러센터'를 설립한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는 28일 "저도 장애인 지원 사업을 26년 했는데 시청각 중복 장애인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몰랐다"고 털어놨다.

시각과 청각장애가 모두 있는 시청각 중복 장애인은 국내에 1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소통 수단이 없어 세상과 단절되고, 스트레스가 커 은둔하다시피 지내다가 단명하는 사례가 잦다며 정 대표는 안타까워했다.

정 대표는 "시각장애가 있었다가 청각장애까지 생긴 경우 점자를 배웠다는 전제로 손에 점자를 찍어주는 '촉점자'로, 청각장애인이었다가 시각장애가 생긴 경우 수화하는 사람의 손과 팔뚝을 직접 만지는 '촉수화'로 소통한다"면서도 "태어날 때부터 시청각장애가 모두 있는 경우는 소통이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촉점자나 촉수화라는 수단이 있더라도 이에 능숙한 활동보조인이 많지 않다는 점도 시청각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힘든 이유라고 한다.

정 대표는 "보통 청각장애인이라면 수화통역사 혼자 여러 명을 상대할 수 있지만 촉수화의 경우 활동지원사가 시청각 중복 장애인을 여럿 상대하다 보면 1시간 만에 진이 다 빠질 정도"라며 "시청각 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설리번'(헬렌켈러의 스승) 양성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밀알복지재단이 설립한 헬렌켈러센터는 이런 이유로 집에 틀어박힌 시청각 중복 장애인을 찾아내 교육하고 활동보조인을 양성하는 사업을 한다.

출범 초기라 현재 상근직원은 2명, 센터 운영을 논의하는 위원회는 10여명으로 단출하다.

정 대표는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무엇보다 시청각 중복 장애인 지원법인 일명 '헬렌켈러법' 통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청각 중복 장애의 복잡성을 고려하면 기존 장애인복지법 체계만으로는 제대로 된 지원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헬렌켈러법은 시청각 장애인만을 위한 별도의 법으로, 이들에 대한 지원 근거를 담고 있다.

지난 2월 국회에서 발의돼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미국 등에는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법이 이미 마련돼 있다.

정 대표는 "입법이 2∼3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현재 발의된 법안이 보건복지위 소위원회를 통과했다"며 "신임 김세연 보건복지위원장도 헬렌켈러법 입법에 진정성이 있는 것 같아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센터의 궁극적 목표는 시청각 중복 장애인들의 자립이다.

미국, 일본 등에서는 변호사나 교수 등 전문직 분야에도 시청각 장애인이 진출해 있다고 한다.

그는 "입법 후 주요 거점도시에 센터를 설립하고 장애인 본인과 가족 상담·교육, 국민을 상대로 한 인식 개선 사업을 하고 싶다"며 "더 나아가 시청각 장애인들도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