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액주주들 한전 앞 시위 >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시행되지 않았다면 한국전력이 지난해 1조60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절감했을 것으로 추산됐다. 사진은 한전 소액주주들이 지난 5월 서울 도곡동 한전 강남지사 앞에서 연 김종갑 한전 사장 사퇴 촉구 집회 모습.  /한경DB
< 소액주주들 한전 앞 시위 >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시행되지 않았다면 한국전력이 지난해 1조60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절감했을 것으로 추산됐다. 사진은 한전 소액주주들이 지난 5월 서울 도곡동 한전 강남지사 앞에서 연 김종갑 한전 사장 사퇴 촉구 집회 모습. /한경DB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시행되지 않았다면 한국전력이 지난해 1조60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절감했을 것으로 추산됐다. 한전이 1조1745억원의 순손실을 피하는 것은 물론 5000억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상 최악의 한전 실적이 탈원전 정책과는 무관하다는 정부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전이 24일 윤한홍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10년간 발전원별 전력 구입 실적’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전의 액화천연가스(LNG) 전력 구입량은 15만473GWh로,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11만8552GWh)보다 27% 늘었다. 반면 원전 전력 구입량은 같은 기간 17.7% 줄었다. 작년 기준 LNG 전력 구입 단가는 ㎾h당 122.62원으로 원전(62.18원)의 두 배에 달했다.

한전이 지난해 원전 전력 구입량을 2016년 수준으로 유지했다면 1조6496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게 한국경제신문과 에너지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다. 1조원대 순손실이 아니라 4751억원의 순이익을 냈을 것이란 얘기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전 적자가 탈원전 정책 때문이 아니라는 정부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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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이 지난해 1조1745억원의 적자(순손실)를 기록했다고 발표한 이후 정부는 한전 실적 악화의 원인이 국제 연료비 상승에 있다고 주장해왔다. 정부의 탈(脫)원전 및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한전도 정부를 의식해 탈원전 정책의 부정적 여파를 줄곧 부인해왔다.

그러나 한전이 24일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분석해보면 정부와 한전 주장이 억지에 가깝다는 게 드러난다.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 국제 연료 가격의 상승보다 구입 단가가 싼 원전 전력 구입량을 대폭 줄인 게 6년 만의 적자 전환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보다 두 배 비싼 LNG 전력 대폭 늘려

지난해 한전의 LNG 전력 구입비는 18조4511억원으로 전체의 35.2%를 차지했다. 2016년(11조9975억원)보다 절반 이상(53.8%) 급증했다. 이는 LNG 전력 구입량 증가와 단가 상승이 맞물린 결과다. 이 기간 한전의 LNG 전력 구입량은 11만8552GWh에서 15만473GWh로 30% 가까이 늘었다. ㎾h당 전력 구입 단가도 101.20원에서 122.62원으로 20% 넘게 올랐다.

반면 원전 전력 구입비는 대폭 감소했다. 2016년 10조4892억원에서 지난해 7조8893억원으로 4분의 1 줄었다. 구입량이 2년 만에 17.7%(2만7292GWh) 감소했기 때문이다. 작년 기준 ㎾h당 원전 전력 구입 단가는 62.18원으로 LNG의 절반에 불과했다. 원전 전력 구입 단가는 2016년 68.03원에서 2년간 오히려 8.6% 내렸다. 한전은 이 기간 원전보다 구입 단가가 각각 1.3배, 1.6배 비싼 석탄과 신재생에너지 전력 구입량도 10.9%와 38.7% 늘렸다.

한전이 작년 원전 전력 구입량을 2016년 수준(15만4175GWh)으로 유지하는 대신 LNG 전력 구입량의 증가분을 그만큼 줄였다고 가정하면 전체 전력 구입비는 1조6496억원 줄어든다. LNG 등 국제 연료비가 상승했다는 것을 감안한 금액이다. 작년에 낸 1조1745억원의 순손실을 메우고도 4751억원이 남는다. 1조원대 적자를 보는 게 아니라 5000억원에 가까운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가가 싼 원전 대신 값비싼 LNG와 석탄 전력 구입 비중을 높이면서 전기료는 못 올리니 한전이 적자를 보는 건 당연하다”며 “탈원전이 한전 적자의 원인이 아니라는 정부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전은 그러나 국제 연료비 상승이 적자 원인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지난해 민간 발전사로부터 사들인 전력 구입비가 7000억원 증가했고, 전력 판매량 감소로 수익이 3000억원 줄었다”고 했다.

“당분간 대규모 적자 피하기 어려울 것”

증권가에서는 한전이 올 상반기 1조17억원의 순손실(에프앤가이드 집계)을 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력 구입비 증가세가 지속돼 적자 행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52조4352억원이던 한전의 전력 구입비는 올해 6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지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원전 가동률 감소로 당분간 대규모 적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한전의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전환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은 현재 10% 미만인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40년 최대 35%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작년 말 160.57%이던 한전 부채비율은 올해 말 처음으로 170%에 육박할 전망이다.

실적 부진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김종갑 사장을 비롯한 한전 경영진은 이달 초 회사 소액주주들로부터 배임죄로 고소까지 당했다. 한전 이사회가 지난달 여름철 주택용 누진제 완화를 의결해 매년 3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윤한홍 의원은 “탈원전 여파로 경영 상황이 계속 좋지 않은데 누진제 완화로 한전이 추가 부담까지 져야 하니 주주들도 뿔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헌형/김소현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