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책임을 맡은 경제장관과 여당 중진의원들이 기업 경영의 기본 원리에 대한 무지(無知)를 대놓고 드러내는 발언을 잇달아 쏟아내고 있어 걱정스럽다. 일본이 경제보복 무기로 삼은 소재·부품의 국산화가 안 된 것이 대기업 탓이라는 주장들이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18일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해 “국내 중소기업도 불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데 대기업이 안 사주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로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 중 하나다. 박 장관의 발언은 대기업들이 국내 소재·부품 산업을 키우지 않고 외국산 제품에만 눈을 돌려 일본의 수출 규제가 먹혀드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오히려 일본의 소재·부품기업을 1위로 띄워 올리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발언은 반도체 제조 공정의 속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기술은 수백 가지의 소재, 장비, 수천 가지의 부품이 협업을 통해 형성된다. 소재 하나하나가 최종 제품의 품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세한 차이만으로 불량이 발생할 수 있다. 박 장관 발언에 대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품질의 문제”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류 소재·부품을 써서 극한의 경쟁력을 키워도 살아남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게 글로벌 경쟁인데,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국산 소재를 써야 한다는 얘기인지 의문이 든다.

무슨 일만 터지면 기업 타박을 하는 정부와 여당 고위인사들의 ‘기·승·전·기업 탓’ 행태는 이들이 기업과 시장을 규율하는 법령을 제정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일을 맡고 있기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업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는 작업장 안전사고가 생겼다고 모든 책임을 기업 최고경영자에게 떠넘기고 형사처벌까지 하겠다는 ‘산업안전법’을 뚝딱 만들어내는 따위의 ‘입법 전횡’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더욱 문제다.

소재 부품의 국산화율이 낮은 것도 화학산업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한 탓이 크다. 과거 국내 기업들은 고순도 불화수소 국산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2012년 구미 불산 누출사고 이후 환경규제가 강화돼 불산공장 설립이 어려워졌다.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으로 안전기준은 79개에서 413개로 늘었다. 이 기준을 맞추려면 수십억원의 추가 비용이 드는데 중소기업들이 쉽게 투자에 나설 수 있겠는가.

소재·부품 국산화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아니더라도 달성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정부는 대기업의 정부 연구개발 프로젝트 참여를 배제하고, 연구개발 투자 세액공제를 줄이는 등 발목을 잡아왔다. 오랫동안 소재·부품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규정해 정책 실패를 자초했다. 그러고도 대기업에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의리나 상생 같은 명분 도덕만으로는 복잡한 경제문제를 풀 수 없다. 온갖 규제로 기업의 발목을 묶은 정부와 정치권이 할 소리는 더욱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