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우간다 무암바족 남성의 머리를 영국 사진가 도겟이 측정하는 모습.  /영국박물관 소장
아프리카 우간다 무암바족 남성의 머리를 영국 사진가 도겟이 측정하는 모습. /영국박물관 소장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의 주인공을 흑인 여배우 할리 베일리가 맡고, 첩보영화 시리즈 ‘007 제임스 본드’의 25번째 영화에는 영국 흑인 여배우 라샤나 린치가 본드의 후임 007 요원으로 등장한다고 해 화제가 됐다. 세계는 이렇게 피부색의 차별을 깨뜨려 가고 있는 듯하지만 차별은 여전하다. 유색인종 출신 미국 민주당 의원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 막말 파문이 좋은 사례다.

《낙인찍힌 몸》은 근대과학이 어떻게 ‘인종’을 발명했는지, 인종주의가 어떻게 다양한 인간의 몸을 인종이라는 억지 틀에 가두고 낙인찍어왔는지 그 차별의 역사를 기원부터 현재까지 살핀 책이다. 인종 개념의 기원과 인종론의 형성부터 인종주의가 맹위를 떨친 19~20세기에 낙인찍힌 흑인 노예, 유대인, 무슬림에 대한 억압과 차별, 현대 한국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주민 낙인찍기에 이르기까지 인종주의에 기초한 낙인찍기의 다양한 사례를 들춰낸다.

인류를 피부색에 따라 분류한 최초의 인물은 칼 폰 린네였다. 그는 인종이란 말은 쓰지 않았지만 1735년 발표한 ‘자연의 체계’에서 호모사피엔스를 유럽인 백색, 아메리카인 홍색, 아시아인 갈색, 아프리카인 흑색으로 분류했다. 린네와 함께 인종주의 형성에 기여한 또 한 사람은 미학자 요한 요하임 빙켈만이었다. 그는 ‘그리스 미술 모방론’을 통해 고대 그리스에 ‘서구문명의 원류’라는 위상을 부여했다. 그럼으로써 고대 지중해 세계의 광범위한 동서 문화 교류를 지우고 서구 근대의 백인우월주의 신화가 형성됐다. 빙켈만은 다채로운 색상이 쓰이던 파르테논신전과 에레크테이온신전의 그리스 조각을 유럽인의 흰 피부색과 일치시키려고 표백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니 기가 막힌다.

[책마을] 근대과학이 발명한 '인종'…인간 차별의 '틀'이 되다
린네와 동시대 해부학자들은 인간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머리와 두개골에 관심을 뒀다. 골상학과 두개측정학이 등장한 배경이다. 골상학에 심취했던 비글호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가 찰스 다윈의 코에서 열정과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머뭇거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못할 뻔했다는 이야기에선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19세기엔 백인이 흑인이나 황인보다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해 안면각, 뇌, 두개골, 아래턱 등의 크기를 재는 이른바 ‘과학적 측정’이 유행하기도 했다.

인종주의의 대표적인 피해자는 흑인이다. 흑인과 백인을 가르는 기준으로 ‘한 방울의 법칙’이란 게 있다. 백인과 흑인, 백인과 라티노, 흑인과 아시아인 등으로 아무리 다양하게 피가 섞였어도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흑인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노예해방 이후 1876년부터 엄격한 흑백 인종분리 제도인 짐크로법이 시행됐는데, 이 무렵부터 한 방울의 법칙이 비공식 관습법으로 정착됐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자신의 혈통에 대해 백인과 원주민이 8분의 1씩이고, 흑인 태국인 중국인이 4분의 1씩이라고 했으나 언론은 그냥 ‘흑인’ 골퍼라고 썼다.

저자는 한 방울의 법칙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백인우월주의가 건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백인이 시선의 주체가 되고 백인의 몸이 미(美)의 기준이 되면서 흑인의 몸은 좌절과 공포, 혐오의 대상이 됐다는 설명이다. 피부색이 밝은 흑인이 백인을 선망하며 백인 행세를 하는 ‘패싱(passing)’이 나오는 이유다.

저자는 흑인 노예무역과 차별뿐만 아니라 억압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했던 흑인 운동가들의 삶도 주목한다. 또한 흑인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의 대상을 유대인과 무슬림, 이주노동자 등으로 넓힌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인종을 차별하던 이전과 달리 문화적 지표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신인종주의’다. 유대인은 오랜 세월 여러 지역에서 여러 민족과 섞여 살아온 탓에 외모만으로 그 여부를 알기 어렵다. ‘유대인=백인’이라는 공식은 맞지 않다. ‘예쁜 아리아인 선발대회’에서 유대인이 1등으로 선발된 사건은 패싱의 성공 사례이자 몸을 근거로 인종을 구분하는 것의 비논리성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에서는 ‘비(非)백인 유대인’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

세계 인구 네 명 중 한 명을 차지하는 무슬림도 신인종주의의 피해자다. 무슬림 모두를 테러 용의자로 몰아가는 ‘이슬람포비아’가 이들을 옥죄고 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무슬림을 하나의 인종처럼 여기면서 온갖 부정적 특성을 투사하는 ‘악마화’와 ‘인종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종주의는 우리 안에도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재중동포(조선족) 등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그렇다. 선의와 배려의 의미로 쓰이는 ‘다문화’라는 말을 정작 이주민들은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이 말이 한국문화와 다문화를 나누고 경계를 설정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타자의 몸에 덧씌워진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