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대로 된 ‘심판’의 역할을 하지 못해 새 모빌리티(이동수단)업계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25일 서울 삼성동 엔스페이스에서 주최한 ‘모빌리티, 혁신과 고민을 낳다’ 토론회에서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빌리티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통합적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일관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달라고 주문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25일 주최한 ‘모빌리티, 혁신과 고민을 낳다’ 토론회에서 류동근 우버코리아 상무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류 상무, 정수영 매스아시아 대표, 김수 카카오모빌리티 정책협력실장, 유정범 메쉬코리아 대표,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책위원.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공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25일 주최한 ‘모빌리티, 혁신과 고민을 낳다’ 토론회에서 류동근 우버코리아 상무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류 상무, 정수영 매스아시아 대표, 김수 카카오모빌리티 정책협력실장, 유정범 메쉬코리아 대표,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책위원.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공
“정부 입장 명확지 않아”

우선 정부가 명확하지 않은 입장을 나타내는 것에 비판이 쏟아졌다. 김수 카카오모빌리티 정책협력실장은 “카풀, 타다 같은 서비스는 법의 예외조항을 이용했다”며 “이해관계자는 예외조항을 각자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기 마련인데 정부가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렸다면 많은 갈등이 해소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모빌리티 서비스가 법의 예외조항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카풀업체는 자가용의 유상운송을 금지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81조에서 ‘출퇴근 때 승용자동차를 함께 타는 경우’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활용했다. 쏘카의 자회사 VCNC의 차량호출 서비스 타다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령 18조에서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임차하는 사람에게는 운전자 알선을 허용한다는 예외조항을 활용했다.

이들을 두고 정부는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타다에 합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적이 없다고 밝혔다. 택시업계 등의 계속된 요청에도 사법부의 불법 여부 판단이 먼저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도 ‘타다 서비스는 합법’이라는 민원 답변을 내놨다가 뒤늦게 부정했다.

김 실장은 “2014년에는 우버가, 2016년에는 카풀업체가 등장했다”며 “정부가 4~5년 전부터 승차공유 서비스에 대한 정책 로드맵을 가지고 있었다면 택시업계의 안타까운 희생,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 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부가 세계적 트렌드였던 승차공유 서비스에 대한 시류를 읽지 못했다는 얘기다.

부처 간 엇박자도 모빌리티 문제를 풀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정수영 매스아시아 대표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소관 부서 관점으로만 각자 해석하다 보니 합의가 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시민단체까지 찬성한 모빌리티 서비스조차 관련 규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매스아시아는 전동킥보드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단거리 이동수단)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전동킥보드의 경우 지난 3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규제·제도혁신 해커톤’에서 면허 면제, 자전거도로 허용 등 규제 완화가 합의됐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규제에 묶여 있다.

“5개 부처가 얽히고설켜”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책위원은 “마이크로 모빌리티 분야에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부, 행정안전부, 경찰청까지 5개 부처가 달려 있다”며 “제안이나 건의할 게 있어도 어디에다 말해야 할지 헷갈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불투명한 규제도 도마에 올랐다. 류동근 우버코리아 상무는 “시행령, 조례에 더해 지방자치단체 지침이라는 규제도 있다”며 “공지도 안 된 것을 지자체 내부 지침이라고 해서 따라야 했던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정부가 우왕좌왕할수록 새로운 모빌리티기업이 등장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모빌리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을 때 대표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했다”며 “사업이 잘돼 알려지게 되면 규제가 시작되고 사회 이슈가 될까 봐 불안해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와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3월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에서 합의한 ‘규제혁신형 플랫폼택시’는 시작도 못 하고 있다. 택시 월급제 도입 등을 다루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과 택시운송사업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차 정책위원은 “모빌리티 전반의 국가적 비전, 로드맵이 없기에 기업들은 예측가능성 없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이라며 “정부는 일관된 신호가 나올 수 있게 규제 체계를 정리하고, 국회는 책임감을 갖고 규제 혁신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