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미래에도 얽매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그저 열심히 살아간다.’일본의 사케 ‘지콘(而今)’이 담고 있는 뜻이다. 이 술은 1818년부터 사케를 빚어온 양조장 키야쇼주조에서 탄생했다. 이곳은 2000년 초반까지 작은 양조장에 불과했다. 2002년 지콘이 탄생하며 이제 일본에서도 없어서 못 사는 귀한 술을 만든다. 일본 내 사케 주조장은 약 1200개. 수많은 사케 양조장 중 키야쇼주조가 전국 최고의 양조장으로 거듭난 배경에는 ‘전통’과 ‘진화’가 있었다.6대 사장으로 키야쇼주조를 이끌고 있는 다다요시 오니시 대표(42·사진)를 최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다다요시 대표는 “지콘은 우리 양조장 200년 역사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빚은 술”이라고 소개했다. 2002년 다다요시의 아버지가 쓸쓸히 술을 빚고 있을 때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오로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지금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며 ‘산수경’에 나오는 첫머리를 읊조리면서 지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다다요시 대표는 유제품 회사에 다니다가 2005년 가업을 물려받았다. 지콘 사케를 직접 만들고, 본격적으로 전국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사케의 역사를 물려받았다는 사명감으로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겨줄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지콘은 옛 양조장에서 100% 수작업으로 생산된다. 수요가 크게 늘어도 생산량을 늘리지 않았다. 다만 온도와 습도 조절 등 미세하게 맛의 균형을 잡기 위한 신기술과 설비에는 투자했다.양조장이 있는 미에현 나바리시는 사방이 산으로 된 분지 지역이다. 땅은 비옥하고 물이 많다. 여름과 겨울 일교차가 커 벼농사가 활발한 지역이기도 하다. 키야쇼주조는 이 지역에서 재배된 야마다니시키 품종 쌀을 소량으로 씻어내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발효한다. 단맛과 신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게 특징이다. 또 빚은 술을 부대에 담아 매단 뒤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술을 모으는 ‘후쿠로쓰리’ 방식으로 완성한다.다다요시 대표는 “쌀 본연의 단맛과 감칠맛을 내면서 산미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늘 연구한다”며 “미생물 번식을 막기 위해 양조장 직원과 가족 모두 ‘낫토(일본식 청국장)’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그의 양조 철학을 물었다. 다다요시 대표는 “깨끗한 술, 깊은 맛을 내면서 균형이 잡힌 술을 빚는 게 나의 사명”이라며 “지콘이라는 이름처럼 그때마다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늘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글=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와인 하면 레드, 화이트, 스파클링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최근엔 ‘내추럴 와인’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내추럴 와인은 각종 인위적인 첨가물을 넣지 않고 자연 발효해 만든 천연 와인을 말한다. 포도, 효모 찌꺼기를 걸러주는 필터링 공정도 거치지 않는다. 식초에 버금가는 짜릿한 신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내추럴 와인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경기 성남에 있는 ‘비노스앤’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내추럴 와인 전문숍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알려진 곳이다. 내추럴 와인과 관련된 행사와 시음회도 자주 연다.서울 연희동에 있는 ‘비노테카’는 작은 골목 주택가에 숨어 있는 와인숍이다. 내추럴 와인, 유기농 와인, 비오디나미 와인을 전문으로 취급한다. 총 100~150종의 와인을 판매한다. 이 중 내추럴 와인이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지방에서도 내추럴 와인을 선보이는 곳이 있다. 전북 전주에 있는 ‘꺄브뱅베’에는 서울에서도 구하기 힘든 내추럴 와인이 가득 차 있어 마니아층이 많이 찾는다.신세계 L&B에서 운영하는 주류전문매장 ‘와인앤모어’는 12곳의 수입회사로부터 100여 종의 내추럴 와인을 들여왔다. 신세계 L&B는 입문자를 위한 내추럴 와인으로 ‘임부코 슈냉 블랑’(사진 왼쪽)과 ‘엑스트라 리브르’(오른쪽)를 추천했다. 임부코 슈냉 블랑은 산뜻한 맛이 특징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화이트 와인이다. 엑스트라 리브르는 프랑스의 와인전문지에서 ‘내추럴 와인의 롤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 제품이다. 모두 2만~3만원대다.내추럴 와인과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소도 곳곳에 있다. 서울 회현동에 있는 ‘피크닉’ 1층은 낮에는 카페였다가 오후 6시부터 내추럴 와인 바 ‘바 피크닉’으로 변신한다. 와인 초보는 물론 애호가도 두루 찾아오는 곳이다.서울 녹사평에 자리잡은 ‘슬록’은 내추럴 와인 전문 바다. 슬록은 네덜란드어로 ‘꿀꺽꿀꺽 마시기’라는 의미다. 원목 테이블과 의자 등 깔끔한 인테리어가 편안함을 준다. 내추럴 와인 3종을 묶어 잔술로 판매하는 ‘오늘의 석 잔 세트’를 고르면 메뉴 고민을 덜 수 있다. 블루치즈 메시포테이토, 광둥식 딤섬 등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안주도 20종가량 준비돼 있다.서울 성수동을 방문한다면 간판 없는 가게 ‘TBD’를 추천할 만하다. ‘아주 좋은 식사’라는 의미의 ‘Trs Bon Diner’의 약자를 따 이름을 지었다. 시원하게 뚫린 통유리 너머로 ‘TBD’라 적힌 발판을 발견하면 제대로 찾은 것이다. 낮에는 바게트 샌드위치와 커피를, 저녁에는 내추럴 와인과 그에 어울리는 요리류를 선보인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후무스, 가지 요리 등도 많다.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봄이 왔음을 기뻐하며 마시는 한 잔, 비 온 뒤 숲속을 걷는 듯한 싱그러운 한 잔.’화이트 와인 품종 중 하나인 ‘소비뇽 블랑’은 복잡하고 상큼한 향과 가벼운 맛 때문에 ‘봄과 여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통한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풀향기와 자몽의 향, 달큰한 꽃향기와 청량한 배의 맛 등이 동시에 퍼지는 게 특징이다. 이 품종의 고향은 프랑스 보르도 지역이다. 소비뇽(sauvignon)은 ‘야성적’, 블랑(blanc)은 ‘화이트’라는 의미다. 또 다른 유명 화이트 품종인 샤도네이가 오크통 숙성을 거치는 반면 소비뇽 블랑은 품종 그대로의 맛을 즐기기 위해 그대로 병에 담긴다. 그만큼 품종 자체의 맛과 향이 매력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1980년대부터는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이 세계 무대를 평정했다. 와인 마니아들은 지금 무더운 여름날을 상큼하게 깨워줄 화이트 와인 찾기에 나서고 있다. 캠핑과 나들이 시즌을 맞아 시음과 체험 행사, 음식과 함께 즐기는 와인 페어링 이벤트를 소개한다.청정 지역 화이트 와인의 매력뉴질랜드 와인은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톱10 와인’ 중 하나다. 뉴질랜드와 호주의 화이트 와인이 잘 팔리면서 전체 와인 수입에서 화이트 와인 비중은 30%를 넘어섰다.주한 뉴질랜드 상공회의소는 ‘2019 뉴질랜드 와인 페스티벌’을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연다. 오는 25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 워터폴가든에서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열리는 행사는 올해로 11회째다. 이번에는 25곳 이상의 청정 와이너리가 선보이는 대표 와인을 마음껏 시음할 수 있게 했다.야외 바비큐와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전통방식 요리인 ‘항이’도 맛볼 수 있다. 항이는 땅의 열을 이용해 고기와 채소를 익혀 먹는 요리다. ‘히든 셀러 도어’ 프로그램에는 국내 처음 선보이는 10여 곳 이상의 뉴질랜드 와이너리도 소개된다. 포도 밟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이 축제는 다음달 8일 부산 아난티코브에서도 열린다. 참가비는 1인당 12만~15만원으로 단체로 참여하면 할인받을 수 있다.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한국 시장에서 뉴질랜드 화이트 와인이 지난해 호주 화이트 와인보다 더 많이 수입되는 기록을 세웠다”며 “프리미엄 뉴질랜드 와인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스위스 대사관도 오는 18일 서울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에서 와인 시음회와 강좌를 연다. 스위스 발레주(州)의 토착 품종으로 만든 다섯 가지 화이트 와인과 다섯 가지 레드 와인을 현지인 셰프가 요리와 함께 소개한다. 이 중 꽃과 자몽, 감귤류 향이 느껴지는 ‘케이브 길버트 드바이예’, 18개월간 숙성을 거친 ‘도멩 장르네 제르마니에’ 등의 화이트 와인이 소개된다. 스위스 대사관 관계자는 “제네바 청정 호수 인근 지역에서 재배된 포도로 제조한 독특한 스위스 대표 와인을 소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실속파 마니아 겨냥한 와인 행사자주 마시는 와인을 할인해 살 수 있는 행사들도 5월 내내 이어진다. 백화점과 마트를 찾아가면 된다.현대백화점은 17일부터 19일까지 신촌점, 24일부터 30일까지 압구정본점과 무역센터점에서 ‘와인페어’를 한다. 또 다음달까지 디큐브시티, 천호점, 판교점·미아점 등으로 이어진다. 700여 종의 와인을 30~60% 할인하는데, ‘그랑크뤼 한정 수량 단독 특가전’으로 ‘샤또 퐁테 카네 2007(19만5000원)’ ‘샤또 오브리옹(130만원)’ ‘샤또 딸보 2014(9만9000원)’ 등을 내놓는다. ‘데일리와인 1·2·3만원 균일가전’에는 칠레 와인들이 줄을 서 있다.신세계백화점은 17일부터 23일까지 본점에서 더워진 날씨에 잘 어울리는 스파클링 와인 할인전을 연다. 롯데는 백화점과 마트, 호텔에 동시에 와인 행사를 연다. 롯데백화점은 6월 말까지 인기 와인을 최대 70% 할인한다. 롯데마트는 11일 월드타워점과 서울역점에서 선착순 300명을 대상으로 총 100여 종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와인 엑스포’를 처음으로 준비했다. 서울 롯데호텔은 17일까지 ‘디스커버리 와인 바자’를 열어 와인 235종을 최대 55% 할인하는 행사를 한다.미식가 유혹하는 호텔 와인페어와인과 함께 즐기는 미식의 세계도 열린다. 서울그랜드힐튼호텔은 한식 양식 일식에 와인을 곁들이는 ‘가든 와인 디너파티’를 17일 준비했다. 파크하얏트부산은 23일 프랑스 최정상급 화이트 와인 산지인 알자스 지방의 도멘 알베르만 와이너리와 협업해 ‘도멘 알베르만 와인 디너’를 마련했다. 와인 5종과 다섯 가지 코스메뉴를 즐길 수 있다. 인터컨티넨탈서울코엑스는 28일 ‘비온디 산티 와인 디너’에서 와인 4종과 일곱 가지 코스 메뉴를 내놓는다.무제한 시음 행사도 가볼 만 하다. 제주신라호텔은 6월 말까지 와인 12종을 시음할 수 있는 ‘플라워 테라스 와인파티’를, 노보텔앰배서더 동대문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칠레 등 4개국 스파클링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버블버블 런치’를 마련했다.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