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오른쪽)와 김도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장(국민대 교수)이 1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대담하고 있다.  /한국사회학회·한국경영학회 제공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오른쪽)와 김도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장(국민대 교수)이 1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대담하고 있다. /한국사회학회·한국경영학회 제공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사진)는 18일 “세계적으로 경쟁하기 위한 고민을 하기에도 벅찬데 (정부가) 사회적 책임까지 묻는 건 기업에 너무 큰 짐”이라고 토로했다.

이 GIO는 이날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디지털 G2 시대, 우리의 선택과 미래 경쟁력’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한국사회학회·한국경영학회 주최)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가 국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제외하고 공식 석상에 나선 것은 2016년 네이버 개발자 콘퍼런스 이후 3년 만이다.

이 GIO는 신산업 규제와 기존 산업의 사회적 책임을 ‘농업’과 ‘트랙터’에 비유했다. 모든 나라가 트랙터를 생산하는 경쟁을 펼치는데, 트랙터 만드는 회사가 직업을 잃은 농부들까지 책임지라는 것은 지나치다는 얘기다. 그는 “(사회적 책임은) 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기업은 연구개발과 트렌드를 따라가며 몰입하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GIO는 이어 “회사가 더 커지는 것이 부도덕하다면 기업가정신과 공존할 수 없다”며 “기업이 크거나 작다는 것은 글로벌 스케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진 작심발언 "트랙터 회사에 농민 일자리까지 책임지라니…"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정부가 네이버를 기존 대기업과 비슷하게 보는 시선이 불편하다고 밝혔다.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네이버를 대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으로 지정하고 각종 공시 의무 등을 지게 했다. 네이버는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이 GIO는 “(정부가) 국경 없는 전쟁터인 인터넷시장에서 규제로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반드시 글로벌하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수십조, 수백조원 규모의 비상장 회사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5조, 10조원이 크다며 규제하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자신에 대해) 회장님, 총수님 같은 표현은 (직원들과) 같이 일해온 입장에서 속상하다”며 “네이버는 어디까지가 사측이고 어디까지가 사측이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해진 "경쟁도 벅찬데, 기업에 과도한 책임 요구"
이 GIO는 이어 “(네이버가) 새로운 거버넌스(지배구조)와 투명성을 가진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한 번도 네이버가 ‘내 회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며 “지금도 내 지분은 3%라 혼자 의사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청년들이 기업보다는 공직과 전문직을 선호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프랑스는 대학생의 50%가 창업을 꿈꾼다”며 “한국에서는 공무원, 의사, 변호사를 선호하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자원이 없고 인재밖에 없는데, 그 인재들이 기업에 가지 않는 게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 GIO는 20년 전에 시작한 인터넷 검색 서비스가 일종의 사명감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영어 기반의 좋은 인터넷 검색엔진이 많았는데 한글은 없었다”며 “검색에서 어떤 언어가 잘 활용될 수 없다면 그 언어의 경쟁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는 “한글을 지키기 위해 좋은 검색엔진이 있어야 한다는 엔지니어로서의 사명감이 (네이버 창업의) 큰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20년 전엔 순위권 밖 후발 인터넷 검색엔진 중 하나였다. 지식인 검색 서비스 등을 앞세워 국내 포털시장에서 야후를 비롯한 해외 업체를 따돌리고 1위로 올라섰다. 미국의 구글에 맞서 자국 인터넷 검색엔진이 힘을 쓰고 있는 국가는 한국, 중국, 러시아, 체코 정도에 불과하다.

이 GIO는 “앞으로 세계가 ‘거인(미국·중국 인터넷 기업 등)’들로 잠식됐을 때도 한 곳(한국)에서는 끝까지 저항해 살아남은 회사로 남고 싶다”고 강조했다.

창업 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11년 일본에서 도호쿠(東北)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를 꼽았다. 그는 “철수하면 지금까지 모든 일(일본 사업)이 실패가 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며 “회사 사무실에 가서 너무 큰 압박감에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성공해도 돈도 못 쓰고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의사 결정을 하라는 게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후배들에 대한 이 GIO의 기대는 컸다. 그는 “기존의 수익모델을 계속 지키는 기업은 생명력이 떨어진다”며 “앞으로 네이버 안에서 네이버보다 더 큰 회사가 나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만화에서 큰 적을 때려눕히는 것을 보는 것”이라며 열혈강호, 원피스 등의 만화를 즐겨 본다”고 말했다.

김주완/윤희은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