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결의 중동은지금] 이스라엘 총선 '리셋'…"종교적 군 면제 이슈가 발목 잡아"
이스라엘이 지난달 초 총선을 치른지 약 7주만에 재총선을 열기로 결정했다. 집권 리쿠르당을 비롯한 우파 정당들이 종교적 군면제 법안 문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연립정부(연정) 구성에 실패한 탓이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총리 지명자가 연정 구성에 실패한 것은 이스라엘 사상 처음이다.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 등은 이스라엘 의회 크네세트가 29일(현지시간) 의회 해산 법안을 찬성 74표, 반대 45표로 승인해 의회가 해산됐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새 의회를 구성하기 위해 총선을 다시 열어야 한다. 현지 매체인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은 새 총선일이 오는 9월17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스라엘은 총선에서 크네세트 전체 120석 중 과반인 61석 이상을 차지한 당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42일 안에 연정을 출범해야 한다. 지난 9일 이스라엘 총선 당시 득표율(29.2%)이 가장 높았던 집권 리쿠드당은 크네세트 전체 120석 중 35석을 확보했다. 리쿠드당은 네타냐후 기존 총리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고, 이에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연정 구성권을 부여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번 연정 구성에 실패한 것은 오는 7월 내 개정이 필요한 군 징병 관련 법안을 놓고 우파 정당끼리 이견이 갈린 탓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은 여러 보수·초정통파 정당들과 연정을 추진해왔다. 이 협상 과정에서 군 징병법 개정안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강경 우파로 꼽히는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이 연정 참여 조건으로 초정통파 유대교 청년들에 대해서도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서다.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이끄는 베이테누당은 의석을 5석만 확보했지만 그간 연정 퍼즐의 ‘마지막 조각’으로 꼽혔다.

종교적 군면제 문제는 이스라엘 정치계의 해묵은 쟁점 중 하나다. 이스라엘에선 18세 이상인 남녀 모두가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하지만 유대교 ‘초정통파’ 신자들은 그간 예외를 인정받았다. 유대학교(예시바)에 재학하는 초정통파 신자에게 병역을 면제하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이스라엘 대법원이 이 면제법을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종교적 군면제 인정 여부를 놓고는 이스라엘 우파끼리도 이견이 크다. 세속주의당인 베이테누당은 초정통파 유대교인도 일정 비율 이상 군복무를 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크네세트에서 총 16석을 차지한 유대교 초정통파 정당 등은 종교적 군복무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며 맞섰다. 네타냐후 총리는 연정 구성 마감 시한을 약 세 시간 앞두고 일단 베이테누당의 법안을 1차 투표에 올린 뒤 연정에서 세부내용을 협의하자며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베이테누당과 초정통파 정당 모두 이를 거부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를 놓고 “리에베르만 전 장관은 이제 좌파의 일원”이라며 “그가 지나친 요구를 해서 우파정부를 파탄냈다”고 비난했다. 리에베르만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네타냐후 총리가 초정통파 눈치를 보는 바람에 재총선까지 하게 된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번 투표는 네타냐후 총리의 연정 구성 마감일인 28일이 지난지 불과 10분여 만에 이뤄졌다. 네타냐후 총리가 속한 리쿠드당이 의회 해산을 주도했다. 의회를 남겨뒀을 경우 자칫 총리 자리를 다른 당에 뺏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선 정당 득표율과 별개로 연정 구성에 성공한 이가 총리가 된다. 총선 직후 대통령이 정당 대표 등과 협의를 거쳐 연정 구성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의원을 총리 후보로 지명한다. 이 후보가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 대통령이 당적에 관계없이 다른 후보를 지명한다. 2009년 이스라엘 총선에선 당시 가장 높은 득표율을 낸 카디마당의 치피 리브니 대표가 연정 구성에 실패해 총리 자리를 뺐겼다. 당시 네타냐후 총리는 제2당 당수로서 제3당과 연정을 구성해 총리에 올랐다.

이번 의회 해산 결정으로 이스라엘은 당분간 주요 정책 등 추진이 지연될 전망이다. 재총선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도 보게 됐다.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새 총선을 치르는 데엔 1억3000만 달러(약 1550억 원) 이상이 들 전망이다. 총선 휴일 지정 등으로 인한 추가적 경제 비용은 5억 달러(약 5940억원)에 달한다. 현지 매체들은 재총선을 하더라도 네타냐후 총리의 5선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집권 리쿠드당 관계자를 인용해 “리쿠드당은 네타냐후 이외 다른 이를 총리 후보자로 내세울 의향이 없다”고 보도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