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계동의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그제 벌어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노조원 1000여 명의 시위는 무법천지를 연상시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소속의 두 회사 노조가 인수합병(M&A) 반대집회 도중 경찰에 폭력을 행사해 아수라장이 벌어진 것이다. 경찰 5명(의경 2명 포함)이 치아 골절, 손목 인대 부상을 입었고 경상자도 속출했다.

노조원들은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 너머 경찰을 덮쳐 방패를 뺏고, 멱살을 잡고, 바닥에 쓰러뜨리며 공권력을 무력화시켰다. 대우조선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연초에 대우조선 인수계약(MOU)을 맺은 이후 이어진 막무가내 행보의 연장선상이다. 노조는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주식교환을 통해 중간지주회사(한국조선해양)를 만드는 인수방식이 ‘특혜’이자 ‘헐값’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인력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합병 무산을 위해 총력투쟁을 벌이고 있다.

노조의 이런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산업은행이 삼성중공업에도 대우조선 인수를 제안하는 등 공정한 절차를 밟았다는 점에서 특혜 매각은 어불성설이다. 산업은행이 신설 중간지주회사 지분 약 7%를 확보해 차후에 이익을 실현하는 방식을 ‘헐값 매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엉뚱하다. ‘인력구조조정’ 역시 MOU에서부터 ‘고용보장 조항’이 있는 데다, 양사 경영진이 담화문 등을 통해 수차례 약속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번만이 아니다. 민노총의 밑도 끝도 없는 우기기와 폭력적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커진다. 한 달 전에는 국회 철제 담장을 부수고 경찰과 기자에게 물리력을 행사했다. 민간기업 사장실에서 폭행 사태를 연출하고, 법치의 보루인 대법원과 대검찰청을 불법점거하기도 했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도 공권력은 눈치 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경찰은 현대중공업 불법집회에서 검거한 12명 중 10명을 불과 4시간 만에 석방했다. 지난달 국회 폭력시위 때 연행자 대부분을 풀어준 뒤 비판이 들끓자 엄정한 법치를 약속했지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노조 해방구’라는 우려가 커지는데도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 강행을 선언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사회적 합의’와 국회 입법을 거치겠다던 기존 입장을 손바닥처럼 뒤집은 결정이다. 국내법과 국제조약 간 혼선이 불보듯 뻔한데도 ‘친노 본색’을 유감없이 발휘한 셈이다. ‘파업 시 대체근로권’ 등 최소한의 사용자 권리는 끝내 외면한 일방적인 처사다.

1999년 워크아웃 돌입 이래 대우조선에는 최소 7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국민경제에 큰 부담을 지운 데 대해 노조도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당연한 처신일 텐데, 반성은커녕 집단이익을 앞세우자 여기저기서 “질렸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양사 합병은 오랜 침체에 시달리는 한국조선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다. 매각을 무산시켜 ‘국영 조선소’로 남겠다는 구상은 공멸을 재촉할 뿐이다. 미국 EU 중국 일본 등이 반독점 심사의 칼을 갈고 있다. 20년째 ‘정치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이번에는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