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와 정치 분리' 공감…직접 식량지원 검토 병행할지 주목
WFP총장, 외교·통일장관 만난뒤 "韓지도부, 고통받는 北주민 걱정"


정부가 세계식량계획(WFP)이 요청한 북한 영유아·임산부 등 대상 영양지원 사업 참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을 방문한 데이비드 비슬리 WFP 사무총장을 만나 대북 인도지원 사업을 협의하면서 이런 입장을 밝혔다고 통일부가 전했다.

비슬리 사무총장은 김 장관에게 최근 WFP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공동 조사·발표한 북한의 식량안보 평가 결과를 설명하고, WFP의 대북 영양지원 사업 현황을 공유했다.

김 장관은 인도주의와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는 비슬리 사무총장의 입장에 공감했으며, 양측은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해 상시로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다고 통일부는 밝혔다.

비슬리 사무총장은 이날 김연철 장관 면담 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도 만나 북한 식량상황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관련 의견을 교환했다.

강 장관과 비슬리 총장의 면담에는 한국의 북핵협상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배석했다.

비슬리 총장은 잇단 면담 후 국내 취재진이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느냐'고 질문하자 "모든 국가가 각자 결정을 해야 한다"고 직접적 답변을 피하면서도 "이 나라의 지도부가 북한에서 아무 죄 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황조사 당시 북한이 국제기구 측에 '전례 없는 접근권'을 부여했다며 "우리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도 강조했다.

김연철 장관이 이날 WFP의 대북 영양지원 사업에 참여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정부가 현재 국내 여론 수렴과 함께 진행 중인 대북 식량지원 방식·규모 관련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정부는 북한에 식량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과 국제기구 공여, 혹은 두 방식을 '투트랙'으로 추진하는 것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이번 면담에서 WFP측이 한국 정부의 대북 지원 참여를 요청하고 정부가 이에 부응하는 듯한 답변을 내놓으면서 국제기구 공여 방안이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정부는 지난 2017년 9월 국제기구의 대북 모자보건·영양지원 사업에 남북협력기금에서 800만 달러를 공여하기로 의결했다가 집행하지 못한 상태로, 이 가운데 WFP의 북한 탁아시설·소아병동 아동, 임산부 대상 영양지원 사업이 450만 달러를 차지했다.

다만 WFP에 공여를 추진하더라도 정부는 식량을 직접 지원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도 계속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2000년대 북한에 쌀을 차관 또는 무상지원 형태로 제공할 당시에도 국제기구 공여를 통한 간접적 대북 인도지원을 병행했다.

또 WFP를 통한 지원은 주로 영유아·임산부 등 취약 계층에 대한 영양강화 식품 제공으로 쌀 등의 직접지원과는 수혜대상이 달라 상호 보완적인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강경화 장관과 비슬리 총장은 이날 면담에서 앞으로도 '기아 종식'(Zero Hunger)달성을 위한 협력을 계속하기로 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인도적 지원 관련 협력 및 한국의 개발 경험 공유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