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근 진행 상황과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달성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미국 백악관이 7일(현지시간) 밝힌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 내용이다. 지난 4일 북한의 ‘발사체 도발’과 관련해 ‘미사일’이란 단어는 여전히 사용하지 않았다. 전일 청와대가 공개한 ‘대북 식량 제공 지지 발언’도 포함되지 않았다. 민감한 용어들을 피함으로써 일단 북한을 협상장에 불러오되, ‘공짜 점심’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저드 디어 백악관 부대변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했다”는 내용의 짧은 두 문장짜리 보도자료를 냈다. 구체적인 통화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한·미 정상이 지난 7일 오후 10시부터 35분간 통화했으며, 두 정상은 이번 발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대화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면서 가능한 한 조기에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의 이날 발표에 대해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미사일’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대화의 문을 열어놨다는 의미다.

우리 정부가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지원을 공식화했음에도 백악관이 이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또 다른 외교 전문가는 “현재 미 의회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북한의 4일 ‘원산 도발’을 규탄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적 차원일지라도 대북 식량지원 문제를 대놓고 꺼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백악관의 발표에 대해 그동안 누적됐던 한·미 간 미묘한 의견 차이가 드러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는 백악관 발표가 나오기 1시간 전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이를 지지했다”고 전한 바 있다. 백악관은 북한 비핵화, 청와대는 대북 식량지원에 각각 방점을 둬 발표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미 정상 간 대화 이후 청와대와 백악관의 발표에 ‘뉘앙스’ 차이가 있다는 지적은 예전에도 여러 번 제기됐다.

미·일 정상 간 관계가 한·미보다 더 두터운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등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아베 신조 총리와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통화한 후 자신의 트위터에 “방금 아베 일본 총리와 북한, 무역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매우 좋은 대화였다”고 올렸다. 반면 문 대통령과 통화한 내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을 포함해 총 21차례 통화했다. 미·일 정상 간 통화는 30번에 달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