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항생제 두 번, 기침약과 가래약 세 번, 스테로이드 두 번, 해열제와 소화제 세 번.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소아의 감기 처방전이다.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감기는 원래 바이러스 질환이어서 특별한 치료약이 없다.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의 약 소량과 수분, 영양 섭취면 충분하다. 그런데 왜 이런 처방이 나올까?

엄마는 옆집 아이가 폐렴으로 입원한 것을 알았다. 우리 아이도 초기 증상이 똑같고 보통 감기와는 다른 것 같다. 그렇게 힘들어 보이진 않지만 혹시나 해서 병원을 찾는다. 의사가 보니 폐렴은 아니다. 아이는 목감기에 걸렸고 대증치료면 충분하다. 하지만 아이가 입원할 경우 직장에서 휴가를 내야 하는 엄마의 걱정이 심하다. 의사도 그냥 감기라고 했다가 나중에 악화될 가능성을 미리 걱정한다. 그 결과가 항생제 처방으로 나타난다. 본질적으로 이 처방전은 ‘손해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한 것이다.

사람은 손해에 매우 민감하다. 다음의 실험을 보자. 회사가 잘돼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쪽은 100만원을 주는데, 동전을 던져 앞이 나오면 다 주고 뒤면 한 푼도 주지 않는다. 다른 쪽은 무조건 70만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대부분은 70만원을 선택한다. 두 번째로, 회사가 어려워져 월급에서 100만원을 깎기로 했다. 한쪽은 100만원을 삭감하되 동전을 던져 앞이면 다 깎고 뒤가 나오면 깎지 않는다. 다른 쪽은 무조건 70만원을 삭감한다고 한다. 이제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특이하게도 이번에는 대부분이 동전 던지기를 택한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전망이론’에서 사람은 이득을 볼 때는 안전을 택하지만 손해가 예상될 땐 이를 피하려고 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같은 100만원이라도 이득일 때보다 손해일 때 두 배 이상 큰 고통으로 느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작은 손실이 예상될 때 이를 확대 해석하며 과잉 반응하고, 일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미리 걱정하고 집착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항생제가 들어간 감기 처방전에 의사와 엄마는 만족했다. 손해를 피할 것 같아 안심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 약은 누가 먹는가? 내 아이가 항생제를 자주 먹고 성장하는 와중에 정말로 중요한 감염이 닥쳤을 때 항생제 내성으로 쓸 약이 없다면 어쩔 건가? 지금 피한 손해가 우리 아이에게 더 큰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오늘도 많은 엄마가 아이에게 유산균을 준다. 어떤 기전으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지 않는다. 장에 이로울 거라고 믿고 먹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엄마의 마음 기저에 ‘남들도 다 먹이는데 내 아이만 복용하지 않으면 손해 볼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선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