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도 세계 해운시장 변화물결 주시하고
선제 지원해 젊은 해운인들에게 기회 줘야
전준수 < 한국해양대 석좌교수·경영학 >
현대상선의 대형 컨테이너 신조선은 내년 4~9월 집중적으로 시장에 인도될 것이다. 우리 정기선 해운선사로서는 도박에 가까운 전략이다. 목표로 하는 동맹(alliance) 가입이 뜻대로 안 된다면 독자적으로라도 항로 서비스를 하겠다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현대상선의 영업력으로는 엄청난 과제인데 이런 도전의지 없이는 우리가 원하는 동맹에, 원하는 조건으로 가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맹별로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세분화하고 국가 외교력까지 동원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신조선 인도 일정을 감안할 때 올가을까지는 동맹 가입이 구체화돼야 신조선 투입 후 운항 일정을 맞춰나갈 수 있다.
유럽연합(EU)의 ‘블록 이그젬프션(block exemption)’ 규정은 예전의 막강한 동맹이 폐지되면서 해운산업을 돕고자 어느 정도의 해운산업 질서 유지를 위해 인정했던 규정으로, ‘선사 간 선박 공유와 시장 점유율 30% 제한’이 그 주요 내용이다. 이 규정은 내년 4월이면 종료되기 때문에 올해 말까지는 연장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른 새로운 환경 상황도 우리의 동맹 가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대상선뿐만 아니라 전문가들과의 공동 전략 논의가 활발히 그리고 은밀히 이뤄져야 한다. 우리 원양정기선 해운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편 벌크선 분야에선 한전, 포항제철 등 대(大)화주와의 장기화물 운송계약을 맺지 않은 선사들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지난 1월 브라질 댐 붕괴에서 비롯된 철광석 생산 차질 등으로 인한 수요 침체로 인해 벌크선 운임지수(BDI)는 다시 1000 이하로 떨어졌다. 금융위기 전 1만2000에 이르렀다가 680까지 곤두박질한 BDI는 작년 1200선으로 고개를 들다가 다시 하락세를 타고 있다.
최근 부산의 중견선사 동아탱커의 법정관리는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는 해운기업의 실상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0척 이상의 선박을 매각했는데 국책은행은 시세가 좋은 자동차 운반선 세 척도 매각할 것을 종용했다. 동아탱커 측은 이익의 70%를 창출하는 자동차 운반선을 매각하면 회사 재건이 불가능하다고 설득했지만 수용되지 않자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법원은 동아탱커의 손을 들어줬다.
대통령이 의지를 보이고 있는 해운재건 계획의 본래 정신에 맞춰 금융기관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해운재건은 구호에 그칠 것이다. 해운재건의 상징으로 탄생한 해양진흥공사는 어려움에 직면한 해운기업을 능동적으로 도와야 한다. 건실하고 튼튼한 공기업이기보다는 해운산업 재건에 기꺼이 희생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
시중은행과 증권회사, 금융회사들이 혁신 중소벤처기업,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부동산 담보대출에서 점차 직간접 투자를 늘려가는 추세다. 스타트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현상으로 보인다. 과거 해운산업에는 젊은 해운인들이 신생 기업을 창업해 중견기업이 되고 대기업으로 발전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식의 성장 가능성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해운산업은 2020년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 따른 대변화가 예고돼 있다. 많게는 운행 중인 선박의 4분의 1이 도태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강 그리스 선주들은 지난해 46억달러를 들여 총 305척(2822만t)의 선박을 사들였다. 우리도 이런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기회로 삼으려면 대대적인 신조선 건조가 요구된다. 해양진흥공사는 이미 계획돼 있는 신조 벌크선 160척 계획의 3분의 1이라도 1년 내 건조될 수 있도록 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대선(貸船)회사나 신조선 펀드 조성 등을 통해 자금력이 부족한 젊은 해운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우리 해운도 꿈나무 기업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