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스, 카탈루냐 독립추진 부정적 여론 기회로 '약진'…극우 견제심리 뛰어넘어
조기총선 압박 국민당 몰락…'좌우합작' 사회·시민당 연정가능성 최대관심사
스페인 극우, 첫 하원입성 '돌풍'…민주화 이후 최초
28일(현지시간) 치러진 스페인 조기 총선에서는 프랑코의 철권통치 종식 이후 44년 만에 최초로 극우 정당의 원내진출이 확실시된다.

복스의 이런 약진은 카탈루냐 분리독립 추진에 정치적 관심 고조와 우파 유권자들의 국민당 심판론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의회 소수파라는 한계로 조기 총선을 선언했던 집권 사회노동당(PSOE)은 과반에 못 미치는 제1당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 어느 정당도 과반의석을 가져가지 못함에 따라 총선 후 정부 구성을 놓고 정파 간 이합집산이 이어질 전망이다.

◇사회적 보수주의 표방 복스, 국민당 심판론 덕에 약진…국민당은 반토막
극우정당 복스(Vox)는 개표 80% 시점의 예상 의석수가 하원 전체 350석 중 24석으로 전망된다.

스페인에서 극우를 표방한 정당 중에 하원에 입성한 것은 이번이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오랜 철권통치에 신음한 스페인에서는 1975년 프랑코 사망 이후 민주헌법을 회복한 이래 강한 극우 견제심리가 발동, 극우가 의회에 진출한 역사가 없다.

그러나 유럽 전체에 불어닥친 강력한 극우·포퓰리즘의 기류에서 이런 스페인도 비켜나지 못했다.

2016년 총선에서 복스가 0.2%의 미미한 득표로 원내진출에 실패한 것을 돌이켜보면 3년 사이 복스의 득표율은 50배 이상 급등했다.

2013년 우파 국민당원이었던 산티아고 아바스칼(현 복스 대표)이 국민당을 나와 창당한 복스의 세는 1년 전까지만 해도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이미 작년 12월 사회노동당의 텃밭이었던 안달루시아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스페인에서 극우 정당이 중앙과 지방을 아울러 의회에 진입한 것 자체가 민주화 이후 처음이었다.

라틴어로 '목소리'라는 뜻의 복스는 강한 사회적 보수주의를 지향한다.

사회당 정부의 포용적 이민정책은 물론, 카탈루냐의 분리독립 추진에 강하게 반대했고, 낙태법 강화, 가정폭력 방지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반(反)여성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복스의 총선 후보에는 독재 프랑코 정권을 옹호했던 퇴역 군 장성들이 포진하는 등 전반적으로 '프랑코 향수'에 기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복스의 약진은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의 극우·포퓰리즘 정당이 주로 유럽연합(EU)에 반대하는 '유럽회의론'과 난민유입에 반발의 목소리를 내며 돌풍을 일으킨 것과 달리 복스는 주로 스페인의 국가적·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에 집중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복스는 카탈루냐 독립추진에 강경한 반대 목소리를 높이며 스페인 민족주의에 호소한 것이 주효했다.

유권자 알폰소 고메즈(57)씨도 투표 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의 핵심은 카탈루냐였고, 내가 복수에 표를 준 이유"라면서 "복스는 카탈루냐의 독립에 가장 선명하게 반대한 정당이었다"고 말했다.

2017년 카탈루냐 지방이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을 강력히 추진한 것에 불만을 품은 우파 유권자들은 카탈루냐 독립선언 당시 집권당이었던 국민당(PP)을 대거 이탈해 복스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대규모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던 국민당이 정부를 사회노동당에 내주자 우파 유권자들의 국민당에 대한 실망은 더욱 커졌다.

따라서 복스의 약진은 우파 국민당에 대한 우파 유권자들의 심판의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카탈루냐 독립 추진에 따른 정치적 관심 고조와 복스의 돌풍 등에 힘입어 투표율도 75%를 넘겨 예전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스페인 극우, 첫 하원입성 '돌풍'…민주화 이후 최초
◇사회당, 조기총선 승부수 '절반의 성공'…연정협상 셈법 골몰
원내 제1당이었던 국민당은 스페인 헌정사상 처음으로 작년 6월 야권의 불신임으로 정부를 사회당에 내준 데 이어 이번 총선에서는 2위로 주저앉았다.

국민당은 실각 이후 내분을 겪다가 중도·리버럴 성향의 신당인 시민당(시우다다노스)과 극우 복스의 약진으로 양쪽에서 압박을 받으며 지지층을 빼앗겼다.

원내 제1당이라는 지위를 무기로 페드로 산체스 총리와 사회당을 끊임없이 압박했던 국민당은 조기 총선을 끌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의석수가 반 토막 나는 처지가 됐다.

예상 의석수로 보면 범우파인 국민당, 시민당, 복스가 연합을 구성해도 과반을 넘기지 못해 집권이 어렵다.

하지만 전체 제1당 지위를 확보한 사회당도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기는 매한가지다.

좌파인 사회당과 포데모스의 예상 의석수를 합쳐도 과반이 안된다.

따라서 집권을 놓고 사회당은 정파 간 연정협상과 그에 따른 이합집산의 중심에 서게 됐다.

사회당은 급진좌파 포데모스와 카탈루냐 민족주의 소수 정파를 규합하거나, 중도우파인 시민당과 연합하는 방안 등 다양한 방안을 열어놓고 있다.

특히 향후 가장 큰 관심사는 좌파인 사회당과 우파인 시민당이 손잡을 가능성이다.

개표 80% 상황까지의 예상 의석수를 보면 두 정당을 합칠 경우 과반이 넘는다.

그동안 시민당은 사회당과의 연합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상황은 유동적이다.

총선에서 절반의 승리를 일군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지난 25일(현지시간) 공영방송 TVE와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정파와 대화하겠다는 것이 내 소신"이라면서 선거 후 시민당과도 연정을 놓고 대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스페인 극우, 첫 하원입성 '돌풍'…민주화 이후 최초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