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사월四月 사월斜月 사월死月 - 이원(1968~)
사랑은 덜컹이며 떠났다고 쓴다 빈자리가 나타났다고 쓴다 납작하게 눌려 있던 것이 길이었다고 쓴다 보았다고 쓴다 거기에 대고 불었다고 쓴다 씨앗이 땅을 뚫고 올라올 때는 불어주는 숨이 있다고 쓴다 숨을 불어넣으려면 땅 안에 들어간 숨이어야 한다고 쓴다 길이 떠오른다 관이 되었다 떠메고 갈 손들이 필요하다 뒤따를 행렬이 필요하다

시집 《사랑은 탄생하라》(문학과지성사) 中

영겁의 세월이 지나도록 생생한 것, 함께했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소중함, 고마움과 미안함이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것, 나날이 탄생하는 것, 그리하여 나를 생기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그러나 사랑이 떠난 자리는 바퀴가 누르고 간 납작한 길 같다. 땅이 숨을 불어줘서 씨앗이 땅을 뚫고 올라오듯이 떠난 사랑을 땅속에 묻으면 땅이 숨을 불어넣어 되살려줄 것만 같다. 땅이 숨을 멈추는 그날까지 4월의 그날은 생생할 것 같다.

이서하 < 시인(2016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