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감사 대란’이 주식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올해 비적정(의견거절, 부적정, 한정) 감사의견을 받아 상장폐지 위기에 처한 기업이 사상 최다인 것으로 집계됐다. 최대 4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관련 주주만 수십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8사업연도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의견 비적정으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상장사(12월 결산)는 32곳으로 집계됐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은 총 2조5633억원에 달한다. 차바이오텍, 에이앤티앤, MP그룹 등 7개 상장사(1조5352억원)가 아직 감사보고서를 내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무더기 상장폐지가 발생한 지난해보다 투자자들의 예상 피해 규모가 더 크다. 한 해 전 감사의견 비적정을 받은 상장사는 21곳(시총 1조8293억원)이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지난해 역대 최악의 기록을 한 해 만에 경신한 것”이라며 “지난해 11월 신(新)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회계법인의 감사가 깐깐해진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비적정 의견을 받은 곳 중엔 흑자 기업도 있다. 시가총액이 8218억원에 이르는 코스닥기업 케어젠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매출채권 감사 증거 확보 등의 문제로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감사의견 비적정 기업은 1년 유예기간을 거쳐 정리매매된다.

증시 덮친 '상폐 리스크'…케어젠 등 32社 수십만 소액주주 발만 동동
1만 명이 넘는 케어젠 주주들은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18일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에 직면했다는 게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화장품 및 의료기기를 제조하는 케어젠은 코스닥 대표 종목 중 하나로 꼽혔다. 시가총액 40위권으로 코스닥150지수 편입 종목이기도 했다. 2017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가파른 성장을 이어갔다. 회사 측은 2017년 매출 579억원, 영업이익 317억원을 낸 데 이어 2018년에는 매출 634억원, 영업이익 366억원을 거뒀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부감사인은 지난해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의견 거절을 제기했다. 회사의 매출채권, 재고자산 등과 관련해 적정성을 확인할 적합한 감사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다는 게 회계법인의 설명이다. 주주들은 재무제표 미확정에 따라 주당 600원의 현금배당도 받지 못하게 됐다.

운용사도 된서리

케어젠뿐만이 아니다. 2018사업연도 감사보고서에서 비적정 의견을 받은 상장사 중엔 시장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종목이 수두룩했다. 지난해 11월 ‘신(新)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외부 감사가 성역 없이 깐깐해진 여파다. ‘한정’ 의견을 받았다가 금융시장에 충격을 안겨줬던 아시아나항공 사태도 그 연장선이었다. 2018사업연도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의견 비적정(의견거절, 부적정, 한정)으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상장사(12월 결산)가 32곳으로 집계되면서 주주 수십만 명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보유 종목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증시’를 걷고 있는 셈이다.

일부 자산운용사도 피해 가지 못했다. 플랫폼파트너스자산운용은 2017~2018년에 코스닥 상장사인 캔서롭, 에이씨티, 코다코 등에 투자했는데 세 종목이 이번 감사보고서에서 모두 의견거절이 나왔다.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자 플랫폼 측은 최근 프라이빗뱅커(PB) 등을 대상으로 감사의견 거절 사태와 관련한 대응방안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캔서롭의 시총 규모는 1700억원대에 이른다. 화장품 소재 개발업체인 에이씨티도 시총 1000억원대 기업이다.

레모나로 잘 알려진 경남제약도 감사범위 제한에 의한 ‘한정’ 감사의견을 받아 퇴출 위기에 몰렸다. 작년 12월 경남제약은 회계처리 위반 적발 등으로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을 받았다가 올초 개선 기간 1년을 얻은 상태였다. 한 소액주주는 “작년 3월부터 거래가 정지된 뒤 우량 최대주주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에 거래 재개를 기대했는데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허탈해했다.

차바이오텍 감사의견에 촉각

주총 시즌이 끝났음에도 아직 감사보고서를 내지 못한 기업도 7곳에 달한다. 차바이오텍과 동양물산 에이앤티앤 퓨전데이타 스킨앤스킨 경창산업 MP그룹 등이다.

시장에선 시총 1조원대에 이르는 차바이오텍의 감사보고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주들은 29일 주총에서 감사보고서 문제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다. 차바이오텍은 “지난해 관리종목 지정으로 회계법인이 바뀐 데 따른 것”이라며 “기존 감사인의 업무 방식과 차이가 있어 여기에 맞추다 보니 공시가 늦어졌다”고 해명했지만 주주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에이앤티앤은 27일 정기 주총을 열었지만 당일까지 감사절차가 끝나지 않아 재무제표 승인을 받지 못했다. 주주 전원의 찬성을 얻어 사업보고서 제출 연장 기한일(4월 8일)에 주총을 다시 열기로 했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회사와 외부감사인의 의견 충돌은 충당부채와 손상 차손, 진행률 인식, 공정가치 평가 등 주로 추정에 의해 산정되는 계정 과목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장사들은 “감사인의 자료 제출 요청이 두 배 이상 급증했다”며 부담을 하소연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기업회계가 투명해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사의견 비적정 문제가 코스닥시장을 중심으로 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안지선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적정 의견을 받은 기업이 늘어나면서 주가 급등락, 대거 퇴출 우려 등으로 인한 시장 참여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조진형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