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논단] 유럽이 미국의 對이란 제재 피하는 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체결한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지난해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JCPOA 당사자인 유럽은 곤경에 빠졌다. 유럽 각국 정부는 JCPOA에 머물기 위한 방책으로 이란과 경제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인도주의적 지원을 넘어서 다른 물품도 제공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란에 수출하는 기업은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를 받을 위험에 노출돼 있다.

유럽 은행들은 같은 이유에서 이란과 금융거래를 할 때 유로화를 제공하기를 꺼리고 있다. 미국 은행들이 달러를 제공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이런 장애물들이 유럽과 이란의 경제협력을 가로막는 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이란 핵협정에 서명한 유럽연합(EU) 3개국은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별도의 무역 메커니즘인 무역거래지원수단(INSTEX)을 설립했다. INSTEX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3개국에서 파견한 외교관으로 구성된 감독위원회가 거래와 관련한 보고를 받도록 했다. 코메르츠방크 출신인 페르 피셔가 운영을 맡았다.

유럽이 이 같은 독자적인 무역 메커니즘을 만든 선례가 있다. 1950년부터 1958년까지 운영된 유럽결제동맹(EPU)이 그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의 통화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서로 교환하거나 달러로 바꿀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국제 거래에 자금을 조달하거나 결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체할 수단도 없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국제 거래에 사용할 금도 거의 갖고 있지 않았고 달러도 없었다. 따라서 무역을 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은 양자 협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 국가들은 상대국과 ‘국가 대(對) 국가’로 무역수지를 맞춰야 했다. 근본적으로는 물물교환 방식이다. 물론 효율적이진 않았다.

1950년대의 이 같은 어려움은 유럽 경제 회복을 명백하게 더디게 했다. 18개 유럽 정부가 모여 EPU를 설립하게 된 이유다. 새로운 조직은 회원국의 무역 적자와 흑자를 한 데 모았고 이를 상쇄함으로써 유럽 통화를 달러로 바꾸지 않더라도 다각도로 무역결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방식을 INSTEX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이란은 한 유럽 국가에서 발생하는 흑자를 다른 유럽 국가와의 교역에서 발생하는 적자와 상쇄할 수 있다. 달러화로 표시된 신용장이나 국제은행 간 통신협정(SWIFT)을 거칠 필요 없이 말이다. 이란과 유럽이 분 단위로 무역수지를 맞출 필요는 없다. 이란이 유럽에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이 수입하고 있는 기간 동안 이란에 수출하는 기업에 신용을 제공하면 된다.

미국 정부는 지금 INSTEX에 반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1950년 당시 EPU의 설립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차별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끼리만 더 쉽게 교역할 수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들 국가는 달러화 부족으로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막혀 있었다. 미국 당국자들은 EPU가 새롭게 창설된 국제통화기금(IMF)의 기능을 복제하고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냉전이 심화하면서 해리 트루먼 행정부와 미국 의회는 유럽 재건의 시급성을 깨달았다. 미국은 결국 EPU에 ‘마셜 플랜 기금’으로 3억5000만달러를 사용하도록 승인했다.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미국이 유럽의 새로운 무역결제 프로젝트를 도울 일은 없다. 하지만 1950년대 당시와는 대조적으로 오늘날 유럽 각국 정부는 독자적으로 이 같은 유형의 무역 메커니즘을 운영할 능력이 있다. 그들에겐 돈이 있다. 게다가 선례를 통해 운영 방법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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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