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新아파트 공화국'을 우려한다
한국 아파트를 비판할 때 꼭 등장하는 두 말이 있다. 하나는 ‘성냥갑’이다. 일(一) 자의 아파트 동(棟)들이 한 방향으로 계속 배치된 모습을 빗댄 말이다. 다른 하나는 ‘아파트 공화국’이다. 유럽에선 저소득층이 사는 아파트가 한국에서는 권위주의적 정부 정책과 재벌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한 나라의 대표적 주거형태가 됐음을 연구한 프랑스 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책 이름이다. 그런데 그는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가 즐비하다고 해서 아파트 공화국이라 하지 않았다. 이 책의 요지는 한국의 아파트는 정부가 주택 수요를 실질적으로 책임지지 않고 재벌급 건설업체에 맡겨 대량 생산하는 주택정책을 펼친 데 따른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은 분양제도와 청약제도라는 두 가지 수단으로 주택공급을 확대했다. 서구의 주택공급제도는 주로 공공주택 배분에 한정돼 있으나 한국은 대규모 주택 건설이 주택정책의 방향이었다. 심지어 20호 이상인 민간주택 건설에도 이 정책이 적용됐다.

획일적인 아파트를 양산하게 한 바탕은 1972년 제정된 ‘주택건설촉진법’이었다. 이 법으로 토지 이용, 배치, 건폐율, 용적률, 높이, 인동거리, 중심시설계획 등이 일률적으로 정해졌다. 게다가 정부는 주택에 직접 투자하지 않았다. 가격과 분양제도를 통제하고, 택지개발과 토지구획정리사업은 주택공사와 토지개발공사가 주도하게 했다. 서민주택 공급을 지원하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라고는 했으나 개인이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공급량에만 관심을 둔 국가가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에 법령을 지킨 아파트를 지으라고 하니 성냥갑 아파트가 대량 생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크게 오른 주택 가격에 온 나라가 시름을 앓는 것도 실은 국가가 나서서 저소득층의 장기임대주택을 오랫동안 축적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아파트 공화국이라 함은 국가가 이렇게 아파트를 양산한 주체였다는 말이다.

다양한 형태 그리고 주변 공동체와 소통하는 단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도 획일적인 아파트를 설계하도록 규정하는 복잡한 법규와 규정은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현행 규정으로는 주동을 가로에 인접해 배치할 수 없고 까다로운 인동거리 기준으로 일률적인 형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도 민간 업자가 이익만 추구하려다 성냥갑 아파트를 지었다고 질타한다. 오히려 그나마 괜찮은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은 공사비와 분양가를 맞추며 고차 방정식 같은 이런 규정 속에서도 설계해낸 노련한 아파트 설계의 전문 건축가들 덕분이다.

10년 전 서울시는 휴먼타운 조성계획을 수립하며 공공주도 방식에서 주민주도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하겠다고 했다. 이러던 서울시가 최근 ‘사전 공공기획’으로 정비사업의 모든 과정에 초기부터 개입해 용적률과 층수, 임대주택 비율, 건축계획, 지역의 역사와 문화, 지형, 기후 변화 등을 관리·조정하겠다고 하며 이를 ‘도시계획 혁명’이라고 했다. 여기에 공공이 정비사업의 가이드라인, 1인 가구의 반영 등을 세세하게 정해주겠다고 한다. 서울시는 선생이고 아파트 설계자는 학생이라 생각했는지 공공의 가치를 살리겠다고 개입하는 항목이 또 지나치게 많아졌다.

성냥갑 아파트를 비판할 때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인터레이스(interlace)’라는 아파트의 독특한 외관을 자주 예로 든다. 그러나 이 아파트는 공공이 사전에 개입하고 공공건축가를 파견한 덕분에 나온 게 아니다. 이 아파트의 건축주는 아시아 굴지의 부동산 회사며 현상설계도 없이 실력있는 창의적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했고 그가 제안한 공동체 가치를 적극 받아줬다.

도시계획 혁명이라며 사전 공공기획으로 간섭하려 하기 전에 건축가의 창의성을 저해하는 현행 아파트 관련 법규를 고쳐주는 것, 아파트를 설계하는 건축가 당사자가 스스로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공공의 첫 번째 임무다. 민간에 아파트 건설을 맡기면 성냥갑 같은 아파트만 짓는다고 판단해 공공이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신(新)아파트 공화국’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