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치한 사랑니 같은 폐치아로 뼈이식재를 만드는 기술을 2009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국내 의료기기 업체 한국치아은행은 최근 규제 샌드박스에 지원할 마음을 접었다. 이 회사는 버려지는 폐치아를 가공해 의료기기로 개발하면 국내에서만 연간 6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폐기물관리법상 폐치아는 의료폐기물로 지정돼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이 회사의 이승복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에 선정되더라도 나중에 규제가 풀릴지 믿을 수 없는데 수년간 헛수고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규제 풀지 않으면 무용지물”

정부는 지난달 마크로젠과 휴이노를 규제 샌드박스 대상으로 선정했다. 마크로젠은 인천 송도 주민을 상대로 대장암 등 중증질환에 대한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서비스 실증특례 사업을 하게 된다. DTC는 병원을 거치지 않고 유전적으로 특정 질환 발병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서비스다. 휴이노는 고려대안암병원과 손잡고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해 심장 질환자 2000명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서비스를 하게 된다.

하지만 헬스케어업계에 규제 샌드박스 선정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가 2년간 한시적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오히려 희망고문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의료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헬스케어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 개선이 차일피일하는 상황에서는 규제 샌드박스 사업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약물을 주입해주고 병원 내 감염 위험은 획기적으로 줄인 의약품 주입펌프를 3년 전 개발한 메인텍도 규제 샌드박스 사업에 부정적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적정한 보험수가를 책정해주지 않아 국내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탓이다.

줄 세우기 비판까지 ‘무성’

원격의료 금지, 의료 빅데이터 활용 제한 등 의료기기와 앱(응용프로그램)을 연동해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헬스케어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휴이노가 규제 샌드박스에 선정됐지만 업계 반응은 미지근하다.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관계자는 “회원사 여러 곳이 규제 샌드박스 참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정부가 어디까지 규제를 풀어줄지 추이를 면밀히 살피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보여주기식 행정에 매달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규제 샌드박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정부가 입맛에 맞는 업체를 골라 신청을 제안한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지난달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바이오 헬스케어 기업 간담회에서 20여 건이 조속히 규제 샌드박스에 추가 선정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정부가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신청하고 정부는 이를 평가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부 입맛에 맞는 업체만 선정할 위험이 있다”며 “업계 줄 세우기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고 했다.

정부 사업에 산업계 ‘집단 보이콧’

바이오업계는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DTC 규제 완화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국내에서 2016년 처음 허용됐지만 검사 가능한 항목이 탈모, 피부 등 웰니스(건강한 상태) 12가지로 제한됐다. 반면 중국 일본 미국 등에서는 관련 규제가 없거나 적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마크로젠에 중증질환 등 25개 항목을 허용하는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한 데 이어 복지부도 웰니스 항목 57개를 허용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업계는 최근 시범사업 보이콧을 선언했다. 업계 관계자는 “복지부가 의료계 눈치를 보느라 바이오업계를 의사결정 과정에서부터 철저하게 배제해 누더기 결과가 나왔다”며 “질병 검사를 제외하는 등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서는 다 할 수 있는 검사인데 기업은 못하게 하는 데엔 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임유/양병훈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