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보유국끼리 이틀간 공습을 주고받은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지난달 26일부터 이틀 연속 전투기 교전을 벌이고 지상에선 박격포 공격을 주고받자 로이터통신 등은 이같이 전했다.
3057㎞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두 나라는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세 차례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인도 공군이 통제선(LoC)을 넘어 파키스탄 공습에 나선 것은 1971년 이후 처음이다. 1999년 카길 전투 때는 인도, 파키스탄 모두 핵실험에 성공한 뒤라 핵전쟁을 우려한 인도 공군이 통제선을 넘지 않았다. 파키스탄이 억류 중이던 인도 공군 조종사를 지난 1일 송환하면서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접경지대의 갈등은 여전하다. 이번 군사 충돌을 계기로 양국 간 갈등의 역사를 살펴본다.
인도-파키스탄 분쟁, 힌두교·이슬람교로 갈리며 시작
양국 간 갈등은 인도(힌두교)와 파키스탄(이슬람교)이 종교에 따라 쪼개지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첫 격돌은 1947년 영국이 철수하고 두 나라로 분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카슈미르를 놓고 벌어졌다.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의 경계에 있는 산악지대다. 면적은 약 22만㎢로 한반도와 비슷하다.
주민의 다수가 이슬람교도라서 파키스탄에 편입되길 바랐지만 카슈미르의 당시 영주 마흐라자 하리 싱이 힌두교도였기 때문에 인도에 통치권을 넘기기로 했다. 그러자 그해 10월 파키스탄 지원을 받은 무장 부족집단이 주도인 스리나가르를 침공했다. 이듬해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면전으로 확대됐고 이게 1차 카슈미르 전쟁이다. 1949년 유엔 중재로 휴전했지만,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아자드-카슈미르)과 인도령(잠무-카슈미르)으로 분단됐다.
1949년 정한 휴전선은 1972년 인도와 파키스탄 간 ‘심라협정’에 따라 정전 통제선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26일 인도 공군은 1971년 이후 처음으로 이 통제선을 넘어 파키스탄을 공습했다. 지난달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공격의 배후로 파키스탄 테러 조직을 지목한 인도는 미라주 전투기 12대를 투입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폭탄을 투하했다. 이에 다음날 파키스탄 공군기는 인도 공군기를 격추했다. 48년 전과 달리 인도와 파키스탄은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카슈미르의 오랜 갈등은 두 나라의 핵무기 개발 경쟁으로 이어졌다. 인도가 1974년 핵실험을 단행하며 핵보유국이 되자 파키스탄도 1998년 실험을 거쳐 핵보유국 선언을 했다.
강화되는 힌두 민족주의
2014년 취임한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파키스탄에 강경 대응할수록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모디 총리는 경제 개혁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취업난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집권 인도국민당(BJP)과 야당의 지지율 격차도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카슈미르에서의 테러 공격은 오히려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전기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장기적인 양국 관계 안정을 위해서는 테러 조직에 대한 파키스탄 측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중단돼야 한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카슈미르 반군 자이쉬-에-무함마드(JeM)는 이번 자살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JeM은 파키스탄정보국(ISI)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를 지원하고 중국은 미국과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지지하고 있다. 샤 메흐무드 쿠레시 파키스탄 외교장관은 지난달 27일 왕이 중국 외교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파키스탄에 전함, 전투기, 단거리 미사일, 잠수함, 감시용 무인기 등 재래무기를 다량으로 판매해왔다. 또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핵심 요충지다. 파키스탄 과다르항에 도착한 원유를 중국까지 운송하기 위한 가스관과 철도·도로망 구축은 양국 간 경제협력의 핵심 사업이다.
반면 미국의 외교적 개입은 이전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크리샨 싱 전 인도 대사는 트위터를 통해 “중재자로서 미국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했다. 다만 미국은 이번 사태의 불똥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튀어 철군 계획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고 있다.
■NIE 포인트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자. 양국이 카슈미르에서 벌인 전쟁들의 원인과 진행 과정 등을 토론해보자. 지구촌 갈등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을 띠는 곳은 어디인지도 살펴보자.
‘전기(電氣)국가’(electrostate)란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다소 생소할 텐데요, 석유국가(petrostate)라는 용어와 비교해보면 감이 올 겁니다. 바로 에너지와 관련된 얘기입니다.석유국가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인 석유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해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나라를 뜻합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있습니다. 미국이 세계 패권을 거머쥔 데는 석유국가의 지배력이 크게 작용했어요. 이젠 전기가 그 자리를 이어받고 있습니다. ‘전기 먹는 하마’인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하고, 전기차·로봇·드론 등 미래 기술 집약체들이 동력원을 전기로 삼고 있기 때문이죠. 모든 게 전기로 움직이는 세상이 되면 세계는 전기국가가 주도하게 될 겁니다.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6년 전 “중국이 석유국가(petrostate) 대신 전기국가(electrostate)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이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작년 중국은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는 세계 최초의 전기국가가 됐습니다. 소비만이 아닙니다. 태양광, 풍력, 원자력 등 청정에너지 기술로 전기를 생산하고 관련 기술을 수출하는 최강국에 오르고 있어요. 석유국가 대신 전기국가로 바로 직행한 겁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런 얘기를 4·5면에서 풀어보겠습니다.모든 게 전기로 움직이는 세상이 왔다'일렉트로 스테이트' 패권 경쟁 본격화인류 역사는 에너지와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새로운 에너지원의 등장과 활용으로 인류는 고도 정보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게 전기입니다. 전기에너지는 경제의 중추적 요소
인류사가 시작한 이래 1820년에 이르기까지 세계경제는 큰 변화가 없는, 장기간의 정체 상태였다. 이를 당대에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한 이는 토머스 맬서스(1766~1834)였다. <인구 관련 원칙에 대한 고찰>(1798)이란 책에서 맬서스는 19세기까지 1인당 총생산과 인구수가 정체됐다는 두 가지 현상이 공존했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맬서스는 농업생산이란 노동과 토지의 조합에서 비롯된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했다. 토지는 고정 요소인 까닭에 인구가 증가하면 무조건 1인당 총생산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역의 확대 등으로 ‘일시적’으로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인구가 ‘일시적’으로 늘어나곤 했다. 생활의 여유가 아이를 더 낳도록 장려하는 효과를 불러왔고, 사망률을 낮추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인구는 끝없이 늘어날 수 없었다. 수시로 1인당 총생산이 생계유지 수준으로 주저앉으면서 결국 사회는 과거 출발점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이른바 ‘맬서스의 덫’이 작동한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해진 운명의 반복 같았지만,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 18세기는 의미 있는 변신이 일어난 세기였다.무엇보다 ‘맬서스의 덫’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인구가 적잖이 늘었다. 18세기 100년 동안 유럽 인구는 9500만 명에서 1억46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세계 인구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도 1700년 17~18%에서 1800년에는 20% 내외로 높아졌다.영국을 중심으로 도시화도 빠르게 진행됐다. 1600~1800년에 영국 인구는 111% 증가했다. 도시 인구 증가율은 600%까지 높아졌다. 그리고 이 같은 도시화 물결은 이 시기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 각지로 빠르
19세기 최고의 영국 작가로 손꼽히는 찰스 디킨스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을 그린 <크리스마스 캐럴>, 기네스북 선정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 <두 도시 이야기>, 돈보다 ‘인간적 성숙’이 중요함을 알린 <위대한 유산>을 비롯해 많은 명작을 남겼다.<올리버 트위스트>는 열 살밖에 안 된 고아 소년이 엄청난 고난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지만 끝내 악에 빠지지 않아 행복을 만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1812년에 태어난 찰스 디킨스는 아버지가 빚 때문에 감옥에 수감되자 열두 살부터 구두약 공장에서 병에 라벨 붙이는 일을 하며 홀로 살았다.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속기술을 배워 의회 기자로 일하며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다.21세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작가가 된 디킨스는 장편소설 <픽윅 클럽 여행기>로 크게 주목받았다. 26세에 출간한 두 번째 장편소설 <올리버 트위스트>가 대중의 폭발적 사랑을 받으면서 인기 작가로 우뚝 섰다. 열두 살에 혼자 살며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던 찰스 디킨스의 마음이 열 살에 거리로 내몰린 올리버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범죄자의 소굴로 들어간 올리버제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자신을 낳고 엄마가 바로 세상을 떠나면서 올리버는 극빈자들을 반강제적으로 수용하는 구빈원에 맡겨진다. 배고픔과 온갖 박해를 참으며 지냈지만, 엄마를 모욕하는 데다 모함까지 당하자 구빈원을 탈출한다.거의 굶다시피 하며 일주일 내내 걸어 기진맥진해진 올리버는 자신에게 말을 건 소년들을 따라간다. 소년들을 소매치기로 만들어 돈을 착취하는 페이긴이라는 유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