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12일(현지시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추가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미가 지난 10일 올해 한국 측 분담금을 지난해보다 8.2%(787억원) 인상한 1조389억원으로 책정하는 내용의 제10차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문에 가서명한 지 불과 사흘 만이다.

트럼프 “전화 몇 통에 5억달러 올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5억달러(약 5627억원) 더 내기로 합의했다”며 “앞으로 몇 년에 걸쳐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화 몇 통에 5억달러를 올렸으며 한국이 내 요구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몇 년 동안 그것(방위비 분담금)은 오르기 시작할 것”이라며 “한국은 지금까지 잘했고 앞으로도 아주 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취임 후 일자리 증가, 해외 공장의 미국 이전 등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는 내년 대선에서 연임에 도전하겠다고 공언했고,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 측 방위비 분담금 5억달러 인상’ 발언이 10일 가서명한 10차 분담금 협정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후 한·미 간에 추가 협의가 있었음을 공개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익명의 외교 소식통은 13일 “가서명 이후 더 이상 논의는 없었던 걸로 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한 카드로 주한미군 관련 협상 결과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여 우려된다”고 전했다.

‘하노이 회담’에서도 기습 언급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약 2주 남긴 시점에 나온 점도 주목된다.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미·북 정상회담 때도 그가 갑작스럽게 주한미군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해 언급해 한국과 미국 정계 및 군사당국이 발칵 뒤집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한 뒤 단독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협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매우 도발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또 “주한미군은 지금 논의에서는 빠져 있다”면서도 “미래 협상을 봐야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전례에 비춰볼 때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승주 전 외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이익집단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내용을 자리를 안 가리고 즉흥적으로 말한다”고 지적했다.

靑 “분담금 동결 1년 더 가능”

청와대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금 관련 발언에 대해 “인상을 너무 기정사실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방위비 분담금 협정의 기한은 1년이지만 ‘한·미 양측이 합의를 통해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 부속 합의문에 들어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인상 필요성 여부를 양측이 검토한 뒤 현재 수준을 유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인천공항에서 취재진에 “미국과 합의한 액수는 분명히 1조389억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수치의 배경이 어떤지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는 있겠지만 하여튼 양국 간 합의한 내용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13~14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미국과 폴란드 공동 주최로 열리는 ‘중동 평화와 안보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올해 예정된 차기 협의에서도 동맹에 대한 우리의 포괄적 기여 등을 충분히 감안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방위비 분담금이 타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