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의 경제 성장 전망이 급격히 어두워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3%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11월 내놨던 1.9% 성장 전망을 불과 석 달여 만에 0.6%포인트나 낮춘 것이다. 유로존 경제는 2017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2.4%로 10년 사이 최대 성장세를 보였지만 불과 2년 만에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모습이다.

EU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둔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불확실성 등으로 유로존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여러 위기가 겹친 최악의 상황을 뜻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란 용어까지 사용했다. 피에르 모스코비치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유럽 경기 둔화세가 지난해 가을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로존, 2년 만에 성장률 전망 반토막…'퍼펙트 스톰' 경고등 켜졌다
유럽 재정위기 때도 버틴 '수출강국' 독일…무역 전쟁엔 속수무책

세계 4위이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1위 경제대국인 독일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5년 만의 최저인 1.5%로 잠정 집계됐다. 독일 정부는 올해 성장률은 더 떨어져 1%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경제의 황금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출 중심인 독일 경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면서 타격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중국 경기가 하강하자 자동차 등 독일 주력 산업을 중심으로 어려움이 커졌다.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등 강력한 친환경 정책과 지난해 가뭄으로 라인강 수위가 크게 낮아진 것도 성장률을 갉아먹은 요인이다.

당장의 성장률 하락을 넘어 독일 경제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고인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에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신산업에선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중심 모델의 위기

독일은 수출 중심 경제 모델을 가지고 있다. 수출 규모는 GDP의 47%로 미국(12%), 일본(16%), 프랑스(31%), 캐나다(31%), 이탈리아(31%) 등 주요 7개국(G7) 가운데 비중이 가장 높다. 독일의 이 같은 강력한 수출 주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2013년 유럽 재정위기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독일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해외 리스크에 약한 수출 경제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고 전했다. 수출의 59%를 차지하는 EU 역내 시장과 7%에 달하는 중국 시장이 경기 둔화를 겪으면서 독일 성장률도 급락세를 타고 있다.

수출 기업의 비명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0.1% 늘어나는 데 그쳤고, 12월엔 4.5% 감소했다. 독일 증시의 DAX30지수를 구성하는 30개 주요 기업은 중국 매출 비중이 평균 15%에 달한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수출 의존적인 독일 경제는 플랜B(대안)가 마땅치 않다”고 우려했다. 수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산업경기 지표들은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독일 산업생산은 3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구조적인 경기 둔화 가능성

전통 제조업과 달리 디지털산업 분야에서는 독일의 강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장률 하락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은 2011년부터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기존 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신산업에서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전통 제조업에 집중하는 장인정신으로 많은 국가의 롤모델이 됐지만 상대적으로 변화 속도가 더디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재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기술 변화로 디지털 경쟁이 심화하면 독일 경제는 적응하지 못하고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인난 심화도 독일 산업계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 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출산율 저하는 숙련공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 노동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124만 개의 일자리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손 부족은 산업 생산 저하와 함께 인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사 갈등도 심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독일 철강노조는 일자리 나누기 명목으로 주 35시간 근무를 28시간 근무로 바꿨다. 올 들어서는 임금 6% 인상과 휴가수당 1800유로를 요구하며 또 파업에 나섰다.

부메랑 돼 돌아오는 친환경 정책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도 독일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탈원전 정책을 펴고 있는 독일은 2038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40%를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을 폐기할 방침이다. 탈석탄 비용은 20년간 400억유로(약 51조33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독일 산업계는 유럽에서 가장 비싼 수준인 전기요금이 앞으로 더 오를 것을 우려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독일의 화력발전 포기는 가장 멍청한 에너지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정성이 떨어지는 풍력과 태양광에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부터 EU 회원국에 적용되고 있는 강력한 배기가스 규제인 국제표준시험방법(WLPT)도 자동차 강국인 독일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한 자동차 판매량 감소는 지난해 3분기에만 독일 GDP를 0.3%포인트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됐다. 자동차와 부품 산업은 독일 GDP의 4%, 수출의 15%를 차지하는 주력 산업이다.

독일 경제의 대동맥인 라인강 수위가 가뭄으로 낮아진 것도 지난해 성장률에 타격을 가했다. JP모간 등은 선박을 통한 제품 운송이 급감하면서 지난해 GDP 증가율을 0.2~0.7%포인트 낮춘 것으로 추정했다.
유로존, 2년 만에 성장률 전망 반토막…'퍼펙트 스톰' 경고등 켜졌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