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관계자가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됐다가 경기 평택시 평택항으로 반입된 폐기물을 조사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환경부 관계자가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됐다가 경기 평택시 평택항으로 반입된 폐기물을 조사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됐다가 국제적 망신만 당하고 최근 평택항으로 돌아온 쓰레기 더미가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로 최종 확인됐다. 지난해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신고돼 필리핀으로 향했지만 실제로는 기저귀, 배터리, 전구 등이 가득 섞인 불법 폐기물이었다. 환경부는 지난 7일 현장조사를 통해 “상당량의 이물질이 혼합된 폐플라스틱 폐기물로 확인됐다”며 경기 평택의 수출업체 G사에 처리 명령을 내리고 기타 업체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G사는 현재 영업을 중단하고 잠적한 상태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국내 쓰레기의 불법 수출이 적발된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는 1995년 도입돼 올해로 24년을 맞은 쓰레기 종량제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서울 중구청의 도움을 받아 재활용품 분리수거 현장을 돌아보고 각종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곧바로 매립지로 향하는 종량제 봉투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의 한 쓰레기 처리업체 집하장. 소속 직원이 북창동 주택가에서 수거한 일반 쓰레기봉투 하나를 풀어헤쳤다. 사과 1개, 먹지도 않은 치킨 2조각 등 음식물쓰레기가 먼저 눈에 띄었다. 유리병, 스티로폼, 페트(PET)병, 비닐 등 재활용품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전체 내용물의 약 25%가 재활용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체 관계자는 “그나마 분리배출을 잘한 편”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쓰레기는 일단 종량제 봉투에 담기면 재활용품 분리 과정 없이 곧바로 소각장이나 매립지로 향한다. 법적으로는 별도 확인 절차가 마련돼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도권의 한 매립지 관리업체 관계자는 “수천 개 쓰레기봉투를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종량제 봉투에 담긴 비닐과 플라스틱은 소각 시 다이옥신 등 유독 물질을 배출하고, 매립되면 수백 년 동안 분해되지 않는다. 수거업체 관계자는 “매립지와 소각장에서 까다롭게 검사하기 시작하면 지난해 폐비닐 대란과 같은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리수거 30%만 재활용 가능”

재활용 쓰레기에선 시민들의 엉성한 분리배출 실태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수거업체는 유리병, 페트병, 비닐 등 재활용품을 구분하지 않고 한 차량에 담아 처리업체 집하장에 한꺼번에 쏟아붓는다. 이날 찾은 처리업체 집하장에도 온갖 종류의 재활용 쓰레기가 한데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시민들이 재활용 쓰레기를 세부적으로 분류하지 않고 내다버린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기저귀, 음식물, 깨진 그릇 등 재활용이 불가능한 일반 쓰레기나 특수 폐기물도 너저분하게 섞여 있었다.
처리업체는 이들 중에서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만 선별해 비닐, 페트병 등 7~8가지 종류로 분류한다. 문제는 재활용품 선별이 기계가 아니라 사람 손으로 이뤄져 시민들이 분리배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재활용되지 못하는 재활용 쓰레기가 많다는 것이다. 컨베이어벨트 양옆으로 선 직원들이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들을 헤집다보면 실제 재활용품 다수는 발견되지 못한 채 소각장으로 향하는 사례가 많다.

처리업체 관계자는 “재활용품이라며 버려진 쓰레기 중 실제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30%에 불과하다”며 “시민들이 제대로 깔끔하게 분리배출하면 선별 과정이 훨씬 쉬워져 재활용 비율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활용업체 63%가 연매출 1억원 미만

이번 쓰레기 불법 수출 사건을 계기로 재활용업체의 영세한 경영 상황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꼽히고 있다. 국내에서의 처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업체의 경영 상황이 동남아시아 등지로의 값싼 불법 수출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에 등록된 5472개 재활용업체 중 종업원이 5명 이하인 업체가 56.7%(3103개)에 달했다. 또한 연간 매출이 1억원이 되지 않는 업체가 전체의 63.6%(3481개)에 이르러 상당수 재활용업체가 영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매출이 100억원 이상인 업체는 전체의 2.4%에 불과했다.

수도권에 있는 한 재활용업체 관계자는 “결국엔 돈 문제”라며 “공공연한 폐기물 불법 수출을 막으려면 재활용업체에 처리 비용을 보조하거나 엉터리 분리배출 단속을 강화해 재활용품 선별 비용을 크게 떨어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