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불의 下生을 기다리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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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30> 경남 통영 미륵도
미래사 편백나무숲 향기에 취하고
삼칭이 해안길 걷다가
애틋한 '복바위 전설'에 情이 머물다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30> 경남 통영 미륵도
미래사 편백나무숲 향기에 취하고
삼칭이 해안길 걷다가
애틋한 '복바위 전설'에 情이 머물다
물산이 풍부해서 요리가 발달한 통영
통영은 조선시대 수군 3만 명 이상이 주둔한 최고의 군사 도시였다. 군수 물자가 넘치니 물산이 풍요로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화폐를 발행하는 주전소까지 있었다. 게다가 통영은 1602년 공사를 시작해 1604년에 완공된 신도시였다. 임진왜란 직후 여수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이 통영 땅으로 옮겨 오면서 전라도 출신 군사들이 대거 이주해왔고 여기에 경상도와 충청도 지역 병사들까지 합류했다. 군수품을 조달하는 12공방을 만들면서 8도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들을 불러왔다. 또 전국 각지 상인들이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해 통영으로 몰려와 살았다. 경상도 땅에 생긴 도시에 전라도를 주축으로 한 전국 각지 사람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융복합 도시가 통영이었다. 게다가 경상도 관찰사나 삼도수군통제사나 같은 직급이었으니 지휘받을 일이 없었다. 통영은 특별자치구역이었다. 통영과 경상도는 동급이었던 거다. 그 기간이 통제영이 폐영되는 1895년까지 무려 300년 동안 지속됐다. 300년 동안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었고, 그 문화 또한 통영만의 독자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통영은 지금의 경상도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빼어난 음식문화를 이어 올 수 있었다. 아무튼 술꾼들이나 해산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겨울 통영은 천국이다. 해산물이 가장 풍성하고 맛있는 시기가 겨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울이 어디보다 따뜻하다. 서울이 영하 10도일 때 통영은 영상이다. 무려 10도 이상 따뜻하다. 겨울 통영을 찾지 않으면 후회할 이유다.
편백나무숲이 광활하게 펼쳐진 미륵도
미래사는 그리 오래된 절은 아니지만 미륵산에는 천년 고찰이 있다. 용화사와 도솔암이다. 용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恩霑)스님이 창건했다. 처음 정수사(淨水寺)라 이름했다가 용화사로 바뀌었다. 도솔암 창건 설화는 호랑이 이야기가 깃들어 있어 이채롭다. 도솔암은 고려 태조 20년(943)에 창건됐다. 창건주인 도솔스님은 17세에 지리산 칠불암으로 출가해 수도하다가 25세 때 미륵산으로 옮겨와 바위굴에서 수도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와 괴로워하며 입을 벌리고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사람을 잡아먹은 호랑이의 고통을 어찌 할 것인가? 딜레마에 고민하던 도솔은 결국 호랑이 입에 걸린 비녀를 뽑아내 준다. 그 뒤 호랑이도 무언가 깨달은 게 있었던 것인지 늘 도솔 곁에 머문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호랑이는 처녀 하나를 물어다 놓고 훌쩍 떠나버린다. 제 먹이를 나눠주는 것으로 도솔과의 인연도 끊어 버린 것이다. 호랑이는 결국 호랑이었던 것이다.
도솔은 기절한 처녀를 정성껏 간호해 되살린다. 사정을 들으니 처녀는 전라도 보성 관아의 아전인 배 이방 딸이었다. 처녀는 혼인날을 받아놓고 목욕하다 호랑이에게 물려온 것이다. 도솔이 보성까지 처녀를 데려가자 배 이방은 감격에 겨워하며 거금 300냥을 시주한다. 그 처녀 목숨값으로 지어진 절이 도솔암이다. 도솔암은 한때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이름 높았다. 6·25전쟁 직후에는 법정스님의 스승이자 조계종 종정을 지낸 효봉(曉峰)선사가 잠시 의탁하기도 했다. 지금도 도솔암 위쪽에는 도솔이 수도한 천연암굴이 있다고 전한다.
통영 최고의 해변도로 삼칭이 해안길
미륵도를 찾는 이들이 케이블카 못지않게 많이 가는 곳은 달아 전망대다. 섬들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빼어난 풍광을 가졌는데도 숨겨진 보물이 또 있다. 삼칭이 해안길이다. 본래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쌓은 제방에 자전거 길을 낸 것이 통영 최고의 해변 길이 됐다. 잘 알려지지 않아 자전거를 타는 이도 거의 없고 걷는 이들만 간간이 보이는 길이다. 길은 통영국제음악당 앞에서 시작해 영운리 마을까지 4㎞에 걸쳐 있는데 가는 내내 바다와 섬들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해안 길이다. 시멘트 도로라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언덕 하나 없이 평탄한 길이어서 느릿느릿 산책하기 딱 좋다.
이 길의 가장 빼어난 풍경은 복바위다. 복바위는 영운리 앞바다에 있는 바위섬이다. 세 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서 있는데 이 섬들에는 애틋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까마득한 옛날 옥황상제의 근위병 셋이 선녀 셋과 함께 이곳에 내려와 몰래 사랑을 나눴다. 그런데 옥황상제가 누군가. 아무리 숨겨도 다 알아낼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의 소유자가 아닌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옥황상제는 불벼락을 내려 그들을 모두 바위로 만들어 버렸다. 대체 사랑이란 무엇일까? 천상의 주인인 옥황상제마저도 질투심에 눈멀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의 힘은 신보다 강한 것이 아닌가. 두렵고 두려워라 사랑이여!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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