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는 천지개벽 중 > 경기 호조에 내년 올림픽 특수까지 겹치면서 일본 도쿄에 신축 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건설 근로자를 확보하려는 업체들의 구인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도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 도쿄는 천지개벽 중 > 경기 호조에 내년 올림픽 특수까지 겹치면서 일본 도쿄에 신축 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건설 근로자를 확보하려는 업체들의 구인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도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일본 회사들의 신입사원 ‘내정식(오리엔테이션)’이 일제히 열리는 10월1일. 한 해 채용시즌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날이다. 지난해 같은 날 도쿄도 지요다구에서 신입사원 170명을 뽑은 미쓰이물산 총무부는 지금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대학을 돌며 올봄에 졸업하는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요즘 회사에서 가장 힘든 자리 중 하나는 채용담당”이라는 게 일본 취업정보업체 디스코의 다케이 푸사코 상임연구원의 전언이다.

구인난으로 폐업하는 ‘기현상’

일본 고용시장은 뜨겁다. 한파가 여전한 한국과는 딴판이다. 여기저기 일자리가 넘쳐난다. 일본의 지난해 실업률은 2.4%로 2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실상 일할 의사와 능력을 가진 사람은 모두 취업할 수 있는 완전고용 상태다.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지난해 11월 유효구인배율은 1.63배를 기록했다. 구직자 100명당 163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같은 달 구인배율(0.61배)의 세 배에 가깝다.

일본의 구인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인력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는 기업이 속출할 정도다. 도쿄쇼코리서치 조사 결과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인력난으로 폐업한 일본 기업 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한 362개에 달했다. 2015년 한 해 폐업 기업 수(340개사)보다 많다.

10년 전만 해도 청년들 사이에서 ‘취업 낭인’이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가 나돌았던 고용시장의 극적 반전이다. 일각에선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 데 따른 당연한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분석은 고령화가 급진전하고 있는 한국 역시 가까운 시간에 청년실업이 자연 해소될 것이란 기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완벽한 오류”라고 단언했다. 박 교수가 김남주·장근호 한국은행 부연구위원과 함께 한국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을 대상으로 한 실증분석이 이를 입증한다. 분석 결과, 청년인구 비중의 감소가 실업 해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고령인구 비중이 늘면 총수요가 줄어 오히려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인구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청년실업 문제는 더욱 악화될 우려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일자리의 답은 기업에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야노 가주히코 일본 미즈호종합연구소 조사본부 이사의 진단은 명쾌하다. 그는 “실업 해소의 근본 처방은 일자리 확대”라며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고 했다.

일본 전체 산업(금융 제외)의 경상이익률은 2009년 2.3%에서 2018년 6.1%로 10년 새 2.6배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일본 제조업의 경상이익률은 2.4%에서 7.8%로, 비제조업은 2.8%에서 5.4%로 뛰었다. 자본금 10억엔 이상인 일본 대기업의 경상이익률은 12%를 넘었다. 과거 일본 고도성장기 5~6%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도요타가 내년 올림픽을 겨냥해 차체를 키워 개발한 택시.
도요타가 내년 올림픽을 겨냥해 차체를 키워 개발한 택시.
건설경기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도 일자리 고갈을 부추기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 건설시장 규모는 단기간에 25% 가까이 줄어들었다. 생존을 위한 군살빼기를 거쳐 살아남은 건설회사들은 수도권 재개발과 도쿄올림픽 특수에 힘입어 ‘퀀텀 점프’를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분야는 신성장 엔진이다. 일본은 이 분야 선두권 국가로 꼽힌다. KOTRA의 ‘4차 산업혁명 국제 경쟁력 비교’ 결과 로봇은 물론 전기차,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조사 대상 12개 신산업 모두에서 일본은 한국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야노 이사는 “과거와 같은 엔고가 시작되더라도, 그 속도가 가파르지 않다면 일자리 호황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 체질개선의 효과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유병연 마켓인사이트 부장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