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기술의 ‘판’이 바뀌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삼성전기에는 새로운 성장 기회가 찾아왔다는 얘기죠.”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9’가 열린 지난 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호텔 로비에서 만난 이윤태 삼성전기 사장(사진)은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정보기술(IT), 자동차 부품 등 해외 거래처와의 미팅을 통해 삼성전기가 오랜 기간 준비해온 5세대(G) 이동통신 및 자율주행차 관련 부품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파악돼서다. 베네치안호텔에서의 비즈니스 미팅을 막 끝내고 다음 만남 장소로 향하는 이 사장과 함께 걸었다.

5G, 자율주행차가 새 먹거리

이 사장은 국내에서 오는 3월1일부터 상용 서비스에 들어가는 5G 서비스가 삼성전기에 안겨줄 첫 번째 ‘선물’로 안테나를 꼽았다. 4G보다 전송 속도가 100배 빠른 5G 스마트폰은 사용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구조의 안테나가 필요하다.

관건은 △초고주파 대역을 송수신하고 △전력 소모가 적으면서 △크기도 작아지는 것이다. 삼성전기가 개발한 ‘플렉시블 인쇄회로기판(F-PCB)’ 안테나가 여기에 해당한다. 삼성전기는 오랜 기간 쌓은 기판 기술 및 패키징 노하우를 활용해 F-PCB 안테나를 다른 부품과 함께 기판에 딱 붙이는 형태로 제작할 계획이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4G 안테나 시장은 기술적 차별화가 어려웠던 탓에 여러 중소기업이 생산했지만 5G 스마트폰용 안테나를 제작할 수 있는 업체는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며 “삼성전기로선 스마트폰용 안테나란 새로운 시장을 얻는 셈”이라고 말했다.

성큼 현실로 다가온 자율주행차는 삼성전기에 더 많은 성장 기회를 줄 것으로 이 사장은 기대했다. 그는 “자율주행차에는 수많은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와 카메라 모듈이 들어간다”며 “MLCC 시장을 이끄는 견인차는 IT가 아니라 자동차부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두 자릿수 성장 가능”

이 사장은 삼성전기의 올해 실적 전망을 묻는 말에는 즉답을 피했다. 다만 “매출은 10%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매출 성장을 이끌 일등공신으로는 MLCC를 꼽았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조5000억원 안팎이었던 세계 MLCC 시장은 올해 14조원으로 확대된 뒤 2023년에는 20조~23조원 수준으로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2조원 수준이었던 자동차용 MLCC 시장이 10조원 규모로 불어나는 데 따른 것이다.

자동차용 MLCC는 IT용보다 더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비쌀 뿐 아니라 생산할 수 있는 업체도 극소수다. 업계 1위인 일본 무라타제작소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2위인 삼성전기가 따라잡는 모양새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나노 기술 단계에서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기술은 반도체지만 마이크로 기술 단계에선 MLCC가 가장 높다”며 “자동차용 MLCC 등 하이엔드 시장은 앞으로 상당 기간 무라타와 삼성전기의 양강 체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기의 매출처가 다양화된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2015년 61.8%였던 삼성전자 매출 비중은 지난해 3분기 46.4%로 크게 줄어들었다. ‘삼성전자 실적 악화=삼성전자 계열사 실적 악화’란 오랜 공식이 깨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라스베이거스=오상헌/좌동욱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