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지갑이 없어졌다. 교실 안 누군가가 지갑을 가져갔는데도 아무도 자수를 하지 않자 화가 난 선생님은 학생들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한다. 그리고 지갑을 가지고 간 사람은 조용히 지금 손을 들으라고 한다. 그러면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용서해 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만약 끝까지 손을 들지 않고 버티다가 나중에 드러나면 가장 무거운 벌을 내릴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범인이 스스로 자수를 하지 않은 경우, 차라리 용서라는 당근을 주면서 자수를 유도하여 피해를 신속하게 회복하고, 앞으로의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 간혹 좋은 방법일 수 있듯이, 우리 시장경제에도 이러한 방법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부당한 공동행위(담합, 카르텔)는 업체들 사이에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발이 어렵다. 더욱이 담합에는 매우 지능적인 수법들이 동원되기 때문에 업계 내부의 누군가가 자진신고나 조사협조를 해 주지 않으면 혐의 입증이 매우 어렵다. 이러한 담합 적발을 더욱 용이하게 하고 앞으로 담합 방지 효과도 줄 수 있게 하기 위해 등장한 제도가 바로 자진신고 감면제도 즉 리니언시(leniency) 제도이다. 담합을 한 사업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배신을 유도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용의자 A와 B가 있다. 이들은 함께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되기 전 절대로 자백하지 말자는 약속을 한다. 검사는 이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심증은 있지만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의 진술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이때 검사는 용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지금부터 당신들을 떼어놓고 심문을 할 것입니다. 만약 둘 다 범행을 자백하면 징역 3년을 구형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한 사람은 자백을 했는데 다른 한 사람은 부인한다면 자백한 사람은 석방하겠지만 부인한 사람은 징역 5년을 구형하겠습니다. 그리고 둘 다 부인한다면 징역 1년을 구형하겠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두 용의자 모두가 부인하는 것이 용의자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되지만 각각의 용의자는 다른 용의자가 부인을 하든, 자백을 하든 모든 경우에 자신이 자백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에 결국 두 용의자는 모두 자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두 용의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라고 하며, 이것을 이용한 제도가 바로 공정거래법상 리니언시이다. 리니언시는 담합을 1순위로 자백한 기업과 2순위로 자백한 기업에게 과징금의 전액과 50%를 각각 감면해주고, 검찰고발까지 모두 면제해 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은밀하게 이루어져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담합사건을 용이하게 적발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공정위의 담합 적발 중 상당수가 리니언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리니언시 제도의 처벌 면제 또는 감경 효과를 의식하여 담합한 기업이 담합을 자진신고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반면, 기업 중에는 리니언시 제도를 악용하여 처벌을 면하고자 자신신고가 무분별하게 남발하거나 자진신고 자체를 기업끼리 담합하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억제하고자 공정위는 자진신고한 기업의 임직원은 직접 심판정에 출석하도록 하고, 자진신고한 기업이 리니언시 혜택을 받은 사실을 누설할 경우 이를 성실 협조의무 위반으로 간주하여 감면혜택을 박탈하도록 했다. 또한, 공정위가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 때, 상습적으로 담합하거나 다른 기업에게 담합을 강요한 때, 1순위 신고일로부터 2년을 초과해 늑장 신고를 했을 때에는 감면 혜택을 배제하고 있다.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할 시장에서 기업들이 가격을 합의하거나 입찰에서 낙찰자를 사전에 결정함으로써의 부당한 이익을 확보하는 담합행위는 분명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든 만약 담합을 하게 되었다면 기업으로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배신할 것인가. 그리고 그 결단이 배신이라면 “승자 한사람이 모든 것을 가진다(winner-take-all)”는 리니언시 제도의 특성상 빠른 자진신고가 필요하다.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학력 및 경력]

△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사법연수원 제36기 수료
△ 서울대학교 전문분야 법학연구과정 수료(공정거래와 한국의 미래)
△ Federal Trade Commission(미국 공정위, Internship)/Steptoe & Johnson LLP(미국 로펌, International Legal Trainee)
△ 공정경쟁연합회 공정거래법 전문연구과정 수료(제6기)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공정거래법 실무)
△ 머니투데이, 이투데이, 삼일인포마인 칼럼위원
△ 공정거래위원회 정보공개심의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