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만 8곳서 28건 발행 주관
28억弗 채권, 해외에 팔아 수익
한국에 사무실도 두지 않은 채 세금 한푼 안 내고 '장사'
금융당국에 위법여부 조사 요청
해외채권 발행 주관사단서 수협은행, 코메르츠방크 제외
국내외 IB들 "정부조치 환영…메자닌 등서도 공정경쟁 기대"
정부가 무면허인 외국계 투자은행(IB)이 한국 시장에서 영업하는 것을 막기로 했다. 국내 증권업 면허가 없는 외국계 IB가 한국 기업의 해외채권과 주식 발행주관을 맡는 것을 금지할 방침이다. 한국에 사무실도 두지 않고 한국 기업을 상대로 돈을 벌면서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는 ‘먹튀’ 외국 자본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평가된다.
9일 금융투자 및 IB업계에 따르면 수협은행은 최근 이달 말로 예정된 3억달러(약 3300억원)어치 해외채권 발행 주관사단에서 독일 코메르츠방크를 제외시켰다. 코메르츠방크는 한국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주관을 꾸준히 맡아온 외국계 IB 중 하나다. 지난해 총 7건, 5억7700만달러(인수물량 기준)어치 한국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을 맡아 이 부문 18위에 올랐다.
코메르츠방크가 수협은행 채권 발행 작업에서 갑자기 빠진 배경엔 한국 정부의 강력한 단속이 있었다. 기획재정부는 국내 증권업 면허가 없는 외국계 IB가 한국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을 맡는 일을 전면 차단하기로 하고 국내외 IB에 이 같은 내용을 통지했다. 금융당국에도 무면허 외국계 IB가 하는 한국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주관 업무가 위법인지를 엄밀히 조사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기재부는 발행신고 접수와 수요예측(기관 대상 사전청약) 시기 결정 등 한국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에 필요한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기재부가 이 같은 초강수를 둔 것은 적지 않은 외국계 IB가 면허 없이 한국 기업을 상대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코메르츠방크를 비롯해 호주뉴질랜드은행(ANZ), 토론토도미니온은행 등 8곳은 면허 없이 총 28건의 한국 기업 해외채권 발행에 주관사로 참여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총 28억4600만달러어치 채권을 인수한 뒤 해외 투자자에게 팔아 수익을 거뒀다.
2014년(48건·34억6500만달러) 이후 5년간 매년 10곳 내외의 외국계 IB가 무면허 상태로 30억달러어치 안팎의 한국 기업 해외채권을 인수하고 있다. 한국 기업을 상대로 꾸준히 돈을 벌고 있지만 이들이 한국에 납부하는 세금은 전혀 없다.
무면허 외국계 IB는 그동안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해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에서 국내 기업의 증권발행 업무와 각종 금융상품 판매 및 중개업무를 하려면 국내 증권업 면허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활동 무대가 해외 시장이면 고객이 한국 기업이더라도 처벌을 받는다는 규정이 없었다. 특히 한국 기업에 대출해준 일부 무면허 IB는 여신 제공을 영업 수단으로 활용해 채권 발행주관사 자리를 꿰차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국내에서 면허를 받아 사업하는 국내외 IB는 정부의 이번 조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채권발행 시장에 무면허 IB의 진입이 금지되면 주식 및 메자닌(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 등 다른 증권 발행에도 똑같은 잣대가 적용될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최고 법인세율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등으로 한국법인을 운영하는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무면허 IB들이 한푼의 비용 부담 없이 똑같은 사업으로 돈을 버는 일은 부당하다”며 “자격을 갖춘 IB끼리 경쟁할 수 있도록 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