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다친 미성년자가 미래 수익을 얼마나 손해 봤는지 계산할 때 학력에 따른 소득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존에 월 200여만원 수준의 일용직 노동자 임금을 일률 적용했던 산정 방식은 청소년의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해 부적절하다는 취지다. 위자료가 훨씬 커지는 방식이라 법조계 및 보험업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법원 “직업 선택 다양성 고려해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7부(부장판사 김은성)는 한모씨(20)가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보다 440여만원 많은 32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2010년 5월 11살이었던 한씨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신호를 위반하고 돌진한 택시에 치여 눈 주위 뼈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당했다. 사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한씨는 현재 전문대에 재학 중이다.

지난해 10월 1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한씨의 일실수입(사고가 없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수입)을 계산할 때 도시 일용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인 약 235만원을 적용했다. 직업이나 소득이 없는 상태의 피해자가 미래에 그 이상을 벌 수 있을지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과거 의대 본과 1학년 학생의 일실수입을 계산할 때도 “3년 남은 의대를 졸업하고 자격을 얻어 의사로 종사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며 일용직 노동자의 임금을 적용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기존 판례에 이의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그동안 피해 증명이 지나치게 엄격해 대부분 피해자가 실제로 입은 손해보다 적은 최소한의 배상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소년인 피해자는 변호사나 공인회계사가 될 수도 있고, 연봉 수억원을 받는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도 있었다”며 “장래 다양한 직업 선택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학력별 평균소득’ 기준 삼아야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새롭게 내놓은 일실수입 기준은 ‘학력별 평균소득’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라 중졸 이하부터 고졸, 전문대졸, 대졸 이상 등 최종 학력별 월평균 임금에 진학률을 반영하는 식이다. 예컨대 중학생 피해자의 경우엔 중학생의 고교 진학률과 고등학생의 전문대·4년제 대학 진학률에 따라 각 학력의 평균소득을 가중평균해 계산해야 한다. 더불어 장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포섭하겠다는 취지인 만큼 성별이나 경력에 따른 차이 없이 전체 평균을 사용하자는 원칙도 제시했다.

한씨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는 전문대에 진학했으므로 그 이상 학력인 4년제 대학 졸업자의 평균소득에 편입률을 반영해 산출한 소득까지 고려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다만 애초에 원고가 청구한 금액이 전문대졸자의 평균소득(월 310만여원)보다 적기 때문에 처분권주의(당사자의 신청 범위를 넘어 재판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그 이상의 배상액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원고와 피고 모두 상고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비슷한 소송과 보험업계 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또 해당 기준의 적합성과 정교화 방법 등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피해자의 교육 정도 및 지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취업 가능한 직업군의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한다. 영국은 부친의 수입 또는 국민 평균임금을 기본으로 하며, 독일은 사고 당시 피해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판단한다.

■일실수입

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한 피해자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경우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입.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기준이 된다. 기존 법원 판례는 직업이나 소득이 없는 미성년자, 대학생 등에게는 도시일용노임 단가를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