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중구의 한 아파트는 최근 경비원 6명 중 4명에게 내년 1월1일자로 고용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경비원의 근무시간도 24시간에서 주간근무(오전 9시~오후 9시)로 바꾸기로 했다. 이 아파트는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16.4% 오를 때만 해도 경비원을 해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년 또다시 최저임금이 10.9% 오르게 되자 이 같은 조치를 단행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월 경비비가 기존보다 150만원가량 늘어나 더 이상 고용을 유지할 수 없다”며 “입주자대표회의를 거쳐 감원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내년 최저임금이 한 차례 더 오르면서 일자리를 잃는 경비원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 목동 14단지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20명(총 120명) 중 한 명인 경비원 A씨(70)는 “7년간 정들었던 직장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며 “주민들이 야속하긴 하지만 기댈 언덕 하나 없는 힘없는 노인들이 뭘 어쩌겠느냐”고 토로했다.

“아파트마다 경비원 감원 검토 중”

아파트 경비원은 최저임금 인상 타격이 큰 직업군으로 꼽힌다. 하루 24시간씩 격일로 근무하면서 야간수당 등이 붙어 임금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인천 남동구에 있는 한 아파트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과 경비업무 감소에 따라 경비원 8명 중 2명을 해고하기로 지난달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합의했다. 올해 10월 입주민 대상으로 벌인 ‘2019년도 경비원 인력 감원 제안서’ 찬반투표 결과 찬성 표가 많았기 때문이다. 제안서에는 경비원 1명에게 3000여 만원의 인건비가 들기 때문에 2명을 감원하면 연간 6000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각 아파트 주민회의에서는 경비원 인력 감원을 안건으로 올려 논의하고 있다. 서울 노원노동복지센터가 18~19일 구내 경비원을 대상으로 한 상담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아파트 주민회의에 경비인력을 줄이자는 안건이 올라와 있다. 서울 서대문의 한 아파트도 지난달 주민회의에서 경비인력 감축 논의안을 다룬 뒤 주민 의견을 취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남구에 있는 한 아파트도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비·미화 인력 재협의 건을 회의하겠다는 내용의 입주자대표회의 공고문을 게시했다.

휴식시간 늘려 임금 인상 최소화

일부 아파트는 경비원 휴식시간을 늘리고 근무시간은 줄이는 식으로 임금 인상 부담을 줄이고 있다. 부산 용호동의 한 아파트는 하루 평균 7시간48분 정도였던 경비원 근무시간을 내년 1월1일부터 5시간20분으로 줄인다. 울산 동구에 있는 한 아파트도 기존 주간 2시간, 야간 5시간이던 휴식시간을 내년 1월부터 30분씩 늘리기로 지난달 결정했다.

광주 서구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최근 시설관리자 박모씨(46)에게 하루 8시간이던 근로시간을 내년부터 7시간으로 줄인다고 통보했다. 주민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관리비 인상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아파트 측은 설명했다. 박씨는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식은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계속 올리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버티다 못한 아파트들이 결국 경비원을 해고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노동계 관계자는 “작년 최저임금 인상 직전 또는 직후에 인원을 줄이기로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올해 5~8월 경비인력을 감축하기로 결정한 아파트도 적지 않다”며 “이달 경비원을 줄이기로 한 아파트보다 내년에 감원하는 아파트가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대량 해고가 현실화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기도는 경비원 등 취약근로자의 일방적 해고를 막기 위해 경기 남부·북부·서부·중부 등 4개 권역으로 나눠 1000가구 이상 대단위 아파트를 방문해 노사 간 화합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서울시도 아파트별로 경비원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입주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컨설팅해주고 있다.

이수빈/장현주/인천=강준완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