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유신체제를 만들기 위한 사전 조치였던 계엄포고령은 위법해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당시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로 유죄를 받은 피해자들의 재심과 국가배상 청구가 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허모씨(76)의 재심 상고심에서 계엄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17일 장기집권을 노리고 유신을 알리는 특별선언을 발표하면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같은 해 11월 집에서 지인들과 모여 도박을 한 허씨는 불법집회를 금지하는 계엄포고령 제1호를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허씨는 2013년이 돼서야 재심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해당 계엄포고령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972년 비상계엄 포고령은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됐고, 그 내용도 영장주의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이어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율성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계엄포고가 해제되거나 실효되기 이전부터 옛 헌법과 현행 헌법, 옛 계엄법에 위배돼 위헌·위법해 무효”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대법원은 박정희 정권이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과 마산에 내린 계엄포고령도 위법해 무효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