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가업(家業) 포기' 내모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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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천자 칼럼] '가업(家業) 포기' 내모는 나라](https://img.hankyung.com/photo/201812/AA.18531997.1.jpg)
세계 1위 손톱깎이 제조회사였던 쓰리쎄븐도 상속세 때문에 가업 승계를 포기했다. 국내 최대 고무의류·콘돔 제조회사 유니더스와 밀폐용기 세계 5위 기업 락앤락 역시 이런 아픔을 겪었다. 명목 상속세율 50%에다 대주주 경영권 승계에 대한 할증(30%)으로 최고 65%까지 세금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최고 상속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6%)의 두 배를 넘는다. 이 때문에 가업 승계를 계획 중인 중소기업이 지난해 67.8%에서 올해 58%로 줄었다고 한다. 승계를 포기하는 중소기업이 10곳 중 4곳에 이른다는 얘기다. ‘가업 승계 특례제도’가 있긴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유명무실한 상태다.
현행 제도상 중소기업 경영권을 다음 세대가 승계하면 200억~500억원의 상속세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상속 이후 10년간 정규직원 수가 줄어서는 안 되고, 유상증자로 투자를 받더라도 지분율이 낮아져서는 안 된다. 법인 자산 80%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구조조정도 제때 할 수 없다. 이렇게 까탈스러우니 이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이 연간 70개 안팎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활발한 가업승계 덕분에 ‘히든 챔피언’이 많이 나오는 독일에서는 가업상속공제가 연간 1만7000건에 이른다. 가업 승계 실질상속세율도 4.5%밖에 안 된다. 스웨덴과 캐나다 호주 홍콩 싱가포르 등은 상속세를 폐지했다. OECD 회원국 중 17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13개국은 공제 폭이 넓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계가 얼마 전 가업 승계 상속세율을 50%에서 25%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다. 가업 승계 펀드를 신설하고 장수기업을 공공기관 우선구매 대상으로 지정하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외국 사례들을 보더라도 오래된 기업일수록 고용과 법인세 납세 규모가 큰 만큼 사업을 승계·유지하도록 돕는 편이 낫다.
우리 사회의 인식 또한 바뀔 때가 됐다. 가업을 이어받아 키우는 것을 단순히 부(富)의 대물림이나 불로소득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유지, 전문기술과 노하우 계승이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상속 두 번 하면 회사가 없어질 정도로 가혹한 상태에서 독일이나 일본처럼 100~200년 장수기업이 어떻게 나오겠느냐”는 기업인들의 하소연을 정부와 국회가 귀담아 들어야 한다.
kdh@hankyung.com